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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교회 “태국전역 복음 전하는 전초기지 세울 것”
20년 가까이 태국선교 앞장
 
문인창 편집국장   기사입력  2012/04/26 [10:54]

▲ 선창교회 고용일 원로 목사와 김 혁 목사, 색소폰선교회팀이 지난 4월 4일(월)부터 일주일간 태국 북부 지역 치앙마이에서 사명자성회를 인도했다. 특별히 이번 성회가 열린 곳은 불교 사원 바로 옆에 있는 호텔이었다. 이곳은 온통 불교의 그림들과 장식물들로 가득한 곳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예배하며 말씀을 나눈 역사적인 현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 문인창 편집국장


태국사명자성회, 고용일 원로 목사에서 김 혁 담임 목사로 이어져

매년4차례 치앙마이, 방콕, 나콘시타마랏 등 4개 지역서 집중 선교

태국교회지도자 및 청년들 대상으로 예배, 찬양, 기도 등 훈련시켜

 

‘여호와의 길을 여소서’(미2:13)란 비전으로 2011년 사역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선창교회(담임 김 혁 목사)가 태국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고 있어 화제다.

이 교회 담임 김 혁 목사는 2009년부터 태국교회 지도자들 및 청년들에게 한국교회의 선진화된 목회교육과 예배문화 등을 교육하고 훈련시키고 있다.

선창교회와 태국교회가 연결이 된 것은 이 교회 원로 목사인 고용일 목사에서 출발한다. 고 원로 목사가 18년 전부터 태국 각 지역을 다니며 태국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훈련하는 ‘사명자성회’를 김 혁 담임 목사가 2009년부터 합류해 더욱 활기를 띈 것.

2002년에 4대 담임 목사로 부임한 김 목사는 고 원로 목사가 해 오던 태국사역을 발전, 계승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목사는 성도들과 당회에 그 뜻을 전했고 당회에서도 그 뜻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 원로 목사와 담임 목사는 한국교회의 특성상, 자칫 관계가 어긋날 수도 있는 관계지만 김 목사의 따뜻한 배려로 교회는 물론 성도들까지 고 원로 목사에 대한 내리사랑을 그대로 김 목사에게 이어갔다. 이런 아름다운 동역의 현장은 태국사명자성회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4일부터 일주일간 태국 치앙마이서
태국교회 지도자 200명 대상 사명자집회 인도

불교 영향권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모여 뜨겁게 예배
중간교회 지도자들도 참석해...태국교회 미래 보였다

 매년 4차례에 걸쳐 고 원로 목사가 해 오던 사명자성회에 김 목사의 동행으로 일 년에 두 차례씩 나눠 사역이 지속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태국교회 지도자들도 자연스럽게 세대교체의 현장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또한 자신들 뿐만 아니라 태국교회의 청년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청년들의 훈련도 부탁하게 되었다.

좀 더 앞서 태국교회 지도자들을 선창교회가 초청하기 시작한 것은 김 목사가 교회에 부임하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일이다. 그때에는 태국교회 지도자를 중심으로 초청을 하여 새벽기도부터 모든 교회의 사역을 소개하고 함께 참여하게 하여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다 김 목사가 부임한 뒤로 교회 지도자들 보다는 젊은 청년들을 초청하여 미래지도자를 키우자는 요청이 있었다.

“태국교회는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교회의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젊은 사역자들이 사역을 기피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태국에 있는 방콕연합한인교회와 협력하여 그곳에서 여러 교회들에게 공문을 보내 참여할 사람들을 모아 함께 방문하는 것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단순한 방문을 넘어서서 좀 더 깊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전담 강사를 초청하여 집중 훈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 새벽 5시 30분을 시작으로 오전 10시, 오후 3시, 저녁 7시 등 하루 네 차례 열린 성회에서 김 혁 담임 목사가 태국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말씀     ©문인창 편집국장


성도들, 홈스테이로 직접 선교현장 경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귀한 은혜의 통로

 
첫 해에는 장년과 청년이 섞여서 참여했다. 그러다보니 전체 분위기가 장년 중심이 되어 예전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청년들은 돌아가서도 계속 태국교회 안에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젊은 청년을 중심으로 다시 초청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 청년 초청을 하게 되었는데 장년의 숫자보다 청년의 숫자가 훨씬 많이 참석하게 되었다.

“태국으로 돌아간 그들이 서로 모여 격려하며 믿음 안에서 자신들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제가 방콕을 방문하여 집회를 할 때에 많은 학생들이 찾아와 함께 교재하며 감사를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진행한 것이 벌써 세 번째를 맞게 된 것입니다.”

▲ 선창교회 초청으로 신앙수련회를 경험한 태국청년들이 선창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문인창 편집국장


지난 3월 28일(월)부터 4월 4일(월)까지 열린 ‘제3차 태국 기독청년 초청 신앙수련회’ 이야기다. 올해 39명이 방문한 신앙수련회에는 10대와 20대 청년들이 많았다. 특별히 이번 태국청년들은 세미나를 진행하는 도중에 스스로 찬양을 인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기도하는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김 목사는 이들에게서 “소망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태국청년들은 돌아간 뒤에도 김 혁 목사와 페이스 북을 이용,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또한 참가자 거의 대부분도 페이스 북에 서로 연결되어 함께 방문했을 때의 감격과 기쁨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서로의 소식을 전하면서 격려하고 세워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헌신하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태국 교회를 위하여 새로운 일을 행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태국의 젊은이들을 깨워 태국의 미래를 준비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 중간교회 지도자들까지 참석한 성회에서 매 시간 필기를 꼼꼼히 하는 태국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태국복음화에 대한 미래가 보인다.     © 문인창 편집국장


‘태국 기독청년 초청 신앙수련회’가 끝나자마자 김 혁 목사는 고용일 원로 목사와 함께 지난 4월 4일(월)부터 일주일간 태국 치앙마이에서 태국교회 지도자 200여명을 대상으로 사명자 집회를 인도하고 귀국했다. 이번에는 선창교회의 색스폰선교회 회원 11명도 동행해 집회 및 예배 시간마다 아름다운 연주로 태국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주었다.

현지에서는 다양한 대중 집회들을 접할 기회가 많이 있지만 대부분 일회적인 집회가 많았다. 태국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선창교회가 지속적으로 매년 같은 시기에 들어가 집회를 통한 말씀 훈련을 함으로서 더욱 성숙하고 다양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접하게 되어 기쁘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번 사명자집회에는 어른들 뿐만 아니라 중간교회 지도자들도 함께 참석해 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모습들도 보였다고 김 목사는 전했다.

“불교의 영향권 안에 있는 태국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번 집회를 연 장소도 불교 사원 바로 옆에 있는 호텔입니다. 이곳은 온통 불교의 그림들로 가득하고 장식물과 조각들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예배하며 말씀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말씀을 놓지 않는 그들을 통해 더 큰 도전과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땅임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선창교회 성도들도 ‘태국사명자집회’와 ‘태국청년 초청 신앙수련회’에 큰 도전과 은혜를 받았다. 특히, 태국 청년들이 3차 신앙수련회로 교회에 방문했을 때 성도들이 홈스테이를 함으로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선교를 체험한 것.

김 목사는 이와 관련해 “태국 청년들의 방문일정 가운데 가장 귀한 시간이 홈스테이인 것 같다”며 “왜냐하면 몇일 동안 훈련 받는 동안에 경직되어 있던 그들이 비로소 홈스테이를 통하여 완전히 한국의 매력에 빠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또 “각 가정에 두 명씩 배정이 되어 토요일 오후에 헤어지면 주일 아침까지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하룻밤을 함께 지내며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이지만 몸짓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게 될 때 그들의 마음이 활짝 열려 주일 오후가 되면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는 청년들이 많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별히 성도들의 입장에서 두 명의 태국 청년들과 함께 지내면서 막연하게 멀리서 지켜보던 때와는 달리 하룻밤 섬김을 통해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떠나갈 때에는 온 가족이 아쉬워하며 서로 주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국청년들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통로가 되어 준 것입니다. 홈스테이는 태국청년들의 입장에서나 선창교회 교인들의 입장에서나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향후 태국 지역을 향한 장·단기 계획에 김 목사는 “태국에 가서 진행하는 사명자성회는 앞으로 계속 진행된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이와 관련해 “매년 4차례 공식적으로 진행하는데 더욱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태국현지 교회에 도움이 되는 집회로 세워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김 목사는 “고용일 목사님이 18년간 태국선교를 하시면서 가장 아쉬워하시는 부분이 우리가 직접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말씀 하신 적이 있다”면서 “태국전역에 복음을 전하는 전초기지를 세우겠다”고 비전을 밝혔다.

김 목사는 “꼭 우리 이름으로 된 교회가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태국선교의 전초기지로서 활용할 수 있는 터전이 생기면 좋겠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라고 덧붙이고 “앞으로는 장기적으로 태국선교의 전초기지가 될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동역자들의 관심과 기도를 당부했다.

▲ 태국사명자성회를 18년 동안 인도한 고용일 원로 목사는 이번 성회에서도 끊임없이 말씀을 전하며 태국을 향한 복음 열정을 불태웠다.     © 문인창 편집국장


이번 선창교회의 태국교회 지도자 및 청년들에 대한 선교사역은 고 원로 목사에서 시작해 김 목사의 동행으로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태국 가운데 치앙마이와 방콕, 나콘시타마랏 등 4개 지역을 꾸준히 섬기는 모습은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일회성이 아닌 실제적인 선교현장인 셈이다.

또한 원로 목사와 담임 목사의 관계가 ‘동역자’라는 아름다운 맺음으로 자연스런 세대교체를 이뤘다.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에서 이제는 더 나아가 ‘태국전역복음 전초기지’라는 열매를 맺을 날이 얼마 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며 도우심”이라는 김 혁 목사와 선창교회의 사역에 향후 태국지역이 어떻게 변화될 지 벌써부터 기대감이 타오른다.

 
‘선할 선(善)’ ‘창성할 창(昌)’ 선창교회는

선창교회는 1959년 5월8일 대전제일교회 청년 면려회에서 개척한 교회이다. 당시 대전제일교회에서 교회 개척지를 찾던 중, 용두리 지역에 교회가 필요함을 알고 이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개인 집사의 가정을 예배 처소로 사용하다가 교회를 지어 옮기게 되었다. 당시 교회 명칭은 용두리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지역 이름을 따서 ‘용두리교회’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1년 4월 교회의 명칭을 용두리 교회에서 선창교회로 개명하여 대전노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

선창교회의 이름의 유래는 유등천과 관련이 있다. ‘용두리’는 지역이름이지만 ‘용의 머리’라는 뜻이어서 교회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아 새로운 이름을 찾고 있었다. 교회 주변에는 유등천이 흐르고 있었다. 유등천에 보를 막아 물을 가두었다가 논밭에 물을 공급하여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보 이름이 ‘선창’이었다. 그래서 선창보가 이 지역 주민들의 육의 양식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는 것 같이 교회도 대전지역에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창의 음만 따서 ‘배 선(船)’자를 ‘선할 선(善)’으로 ‘창문 창(窓)’을 ‘창성할 창(昌)’으로 바꾸어 ‘선창교회’라고 부르게 되었다.


1968년 2월에 고용일 목사가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선창교회는 부흥의 불이 당겨지기 시작했다. 교회가 새롭게 건축되고 교인들의 숫자도 확장되게 되었다. 고용일 목사가 선창교회를 섬기는 동안 제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한 것이 교회 개척이다. 1979년부터 논산 서광교회를 시작으로 중리교회, 월평교회, 서부선창교회, 계룡선창교회, 구봉선창교회, 서대전선창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개척하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든 성도들이 기쁨으로 참여하여 많은 교회들을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기지로 사용하게 되었다. 2002년 고용일 목사의 은퇴를 맞아 김 혁 목사가 4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김 혁 목사가 선창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교회는 무르익어 있었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많은 준비들이 되어 있었다. 부임하자마자 교회 앞 대지를 구입하여 향후 교회 확장의 길을 열어 놓았다. 교회의 본당도 구조 변경을 하여 밝고 활기찬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해외선교에 많은 힘을 써 인도와 인도네시아, 러시아, 미얀마, 중국, 키르키즈스탄 등 많은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 선창교회 전경.     © 문인창 편집국장


1. 이 모든 일들이 선창교회의 기본 뿌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언제 교회가 태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시나요?

선창교회는 1959년 5월8일 대전제일교회 청년 면려회에서 개척한 교회입니다. 당시 대전제일교회에서 교회 개척지를 찾던 중, 용두리 지역에 교회가 필요함을 알고 이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개인 집사님의 가정을 예배 처소로 사용하다가 교회를 지어 옮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 명칭은 용두리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지역 이름을 따서 용두리교회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61년 4월 교회의 명칭을 용두리 교회에서 선창교회로 개명하여 대전노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선창교회의 이름의 유래는 유등천과 관련이 있습니다. 용두리는 지역이름이지만 용의 머리라는 뜻이어서 교회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아 새로운 이름을 찾고 있었습니다. 교회 주변에는 유등천이 흐르고 있는데 유등천에 보를 막아 물을 가두었다가 논밭에 물을 공급하여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보 이름이 선창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창보가 이 지역 주민들의 육의 양식을 구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하는 것 같이 우리 교회도 이 지역에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창의 음만 따서 ‘배 선(船)’자를 ‘선할 선(善)’으로 ‘창문 창(窓)’을 ‘창성할 창(昌)’으로 바꾸어 선창교회라고 부르게 되었다.

1968년 2월에 고용일 목사님께서 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시면서 부흥의 불이 당겨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가 새롭게 건축되고, 교인들의 숫자도 확장되게 되었습니다. 고용일 목사님이 선창교회를 섬기는 동안 제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한 것이 교회 개척입니다. 1979년부터 논산 서광교회를 시작으로 중리교회, 월평교회, 서부선창교회, 계룡선창교회, 구봉선창교회, 서대전선창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개척하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든 성도들이 기쁨으로 참여하여 많은 교회들을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기지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2002년 고용일 목사의 은퇴를 맞아 김 혁 목사가 4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김 혁 목사가 선창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을 때는 이미 교회는 무르익어 있었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많은 준비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부임하자마자 교회 앞 대지를 구입하여 향후 교회 확장의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교회의 본당도 구조 변경을 하여 밝고 활기찬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외선교에 많은 힘을 써 인도와 인도네시아, 러시아, 미얀마, 중국, 키르키즈스탄 등 많은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습니다.

2. 2002년 12월 1일 4대 담임 목사로 부임하셨습니다. 고용일 원로 목사님과도 목회 동역자로 아름다운 동행을 선보이고 있으신데요. 선창교회만의 특징이나 특색이 있다면?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하면서 가장 저를 지지해주시고 도와주신 분이 바로 고용일 원로목사님이십니다. 저는 이것이 큰 자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일반적으로 도와주신다고 하는 것은 많은 것을 알려주시고, 챙겨주시고, 같이 움직이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용일 목사님은 앞에서나 뒤에서나 저에 관해 절대로 부정적인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겸손하셔서 언제나 계신 듯, 안 계신 듯, 교회의 생활을 하십니다. 그러나 뒤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가끔씩 만나면 웃으시며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에게 많은 부족함이 있었지만 그것을 하나도 입 밖에 내지 않으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며 기다려 주신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것이 그리 큰 영향력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 이러한 목사님의 성품과 행동이 저의 목회를 세워주시는 얼마나 큰 힘이었는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이처럼 귀한 어르신을 만난 것이 제 삶에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3. 목사님만의 특별한 목회철학이 있으시다면.

저는 늘 하나님을 향해 순전한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시는 것을 그대로 알고 계시고 느끼고 계시고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숨길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이 목회의 현장을 지키시고 이끄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게 목회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목회철학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늘 배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배우려고 할 때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늘 배우는 자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기도할 때 그곳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4. 목사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예수님을 영접 하셨고, 통합교단의 목회자로서 사역을 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제 아버님께서 목사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태어나 교회 안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신앙을 따라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기 보다는 습관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청년이 되어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었고 친밀하게 다가오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통합교단의 목회자가 된 것은 저의 가정이 모두 통합교단의 목회자입니다. 자형이 서울에서 목회하고 계시고 아버님이 서울에서 목회하시다가 대구에서 은퇴를 하셨습니다.

5. 2011년 교회 비전과 목회 방향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2011년도 선창교회는 “여호와여! 길을 여소서!”라는 표어를 가지고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열어주실 때 그 길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앞서 행하시는 여호와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 여호와와 함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삶, 여호와를 따르며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비전입니다.

특별히 목회적으로는 모든 성도가 복음의 확신 위에 든든히 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행사를 통한 성장이 아니라 말씀의 확신과 담대함 위에 세워지는 성도가 되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일하는 사람이 많은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흔들리지 않고 세워지며, 다른 사람을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 이런 성도들이 있을 때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18(월)부터 22일(금)까지 4인 4색 특별새벽기도회를 진행하셨습니다. 선창교회, 둔산성광교회, 늘사랑교회, 산성교회 담임 목회자들이 교류하시며 말씀을 전하셨는데요, 교단을 넘어선 지역교회들의 아름다운 연합이라고 봅니다. 어떤 취지로 이번 ‘특새’가 기획되셨나요?

원래 특별새벽기도회를 기획하게 된 것은 CTS대전방송에서 진행하고 있는 ‘4인4색 변화산’을 진행하면서입니다. 4명의 목사님들이 매월 같은 주제를 가지고 4가지 상황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하며 해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4인4색을 진행하면서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세상에 의해 흔들리는 것은 우리 안에 반성해야 변화산’영역이 있음을 인식하고 좀 더 순수하고 정직한 모습으로 성도들에게 그리고 세상에 다가갈 방법을 찾는 중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집들을 깨트리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입니다. 강단교류라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며 해답을 자녀라는 가지, 한 성도라는 의식을 갖자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도 각자가 특별새벽기도만이라도 서로 가까운 교회에 나가게 함께 하자는 신앙의 삶이 갇혀진 삶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열려진 삶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교단은 서로 다르지만 성도들이 함께 훈련받아 성교회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대전을 위해 기도하며 협력하는 것으로 발전해 나갈 때 이 사회를 향한 좋은 영향력들이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7. 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 시대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에 맞게 다양한 봉사활동을 물론, 선교와 전도까지 병행하며 기독교의 위상을 떨쳐야 봅니다. 선창교회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요.

선창교회는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의 마음속에 선교를 향한 마음들이 많이 열려있습니다. 특히 지역의 어려운 독거노인들을 위하여 도시락을 만들어 직접 배달하는 일과, 경로대학을 통하여 지역 어른들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와 인도네시아에 있는 유치원을 통하여 타문화권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지를 찾고 실천함으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현장을 보고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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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4/26 [10:54]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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