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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재 권사(청주영광교회) 20호
풍경(골목)
 
한혜림 편집기자   기사입력  2012/08/17 [11:38]
▲ 김윤재 권사(청주영광교회)     ©편집국

 시간을 잃어버린 듯 정지 된 수동 달동네 골목이 드라마 촬영지가 되면서 세상으로 나왔다. 노인들만 서성거렸던 골목에 청바지 젊은이들이 줄을 잇고, 일본인 단체 관광객의 수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이와 함께 커피숍과 빵집이 생겼다. 일반 빵집에서 천 원하는 소보로 빵이 천오백원에 날개돋힌 듯 팔린다.  수동 달동네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갔던 사람들과 이북 피난민들이 새로운 살림을 시작한 곳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으며 살았다.
 
그럴 싸한 슈퍼마켓도 깨끗한 공중목욕탕도 없다. 길목 어귀에 구멍가게 하나 숨겨놓고, 모퉁이 어디쯤에 맛 집 하나 숨겨놓고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필요를 제공했던 곳이다. 골목은 후박나무 잎처럼 섬세한 그물을 드리우고 있다.
 
큰길에서 시작해 여러 갈래 길로 나누어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초입이 어수룩하다. 한두 번 다녀간 골목도 자신 있게 찾아 나섰다가는 낭패를 본다. 구멍 난 양말, 여기저기 기운 내복, 귀한 손님이 찾아와도 변변히 대접할 양식 없는 남루한 삶터가 부끄러워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세련미 넘치는 세상에 낯가림을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여유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거나하게 취한 가장이 ‘쨍하고 해뜰날’을 흥얼거리며 호기를 부려보는 곳도 골목이고, 안노인들이 양지바른 골목에 앉아 지지리도 궁상맞은 일상을 궁시렁 거리며 오수를 즐기는 곳도 골목이다.

골목에선 세월이 멈추는 것 같다. 아기울음이 들리지 않고, 수 년 전부터 입 퇴원을 반복하는 심금녀할머니가 지난겨울 먼 길을 떠나셨다. 네 소식은 골목을 타고 돌아다닌다. 다섯 손가락처럼 서로 연결된 골목에선 날마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평양댁 큰아들이 부장으로 진급 했고, 수선 집 딸은 검사사위를 보았다. 안타깝게도 전당포 건너에 사는 보리밥집 남자는 밤새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젊었을 때 일하던 횟집 딸을 사랑하여 결혼을 했고 분가하여 식당을 운영했는데. 그래서 화끈한 사랑 이야기가 동네아주머니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부러움을 샀었는데.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골목에선 경치도 서러움일 때가 종종 있다. 새벽잠에 취한 도심에서 박스쪼가리며 신문뭉치를 싣고 골목길로 돌아오는 노부부가 돌쩌귀가 떨어져나간 대문으로 자취를 감출 때, 주인 없는 빈집에서 홀로 핀 백일홍을 볼 때 콧등이 시큰하다.

그러나 궁상맞은 것 같지만 약한 것을 강하게 하는 힘을 골목은 지니고 있다. 건달도 골목에서 노인을 만나면 허리를 숙이고, 큰길에서 어깃장을 놓던 고급승용차도 골목에선 쩔쩔맨다.

골목의 밤하늘엔 어둠보다 별이 더 많다. 어느 별보다 더 반짝인다. 이끼긴 담장에 기대 하늘별을 보고 있으면 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밤이 깊어 갈수록 골목의 별은 더욱 빛이 난다. 이런 골목이 드라마 한 편으로 인해 장터처럼 분주해 졌다.
 
시도 때도 없이 몰려다니는 관광객들로 인해 밤잠을 설치고 노인들은 삶의 놀이터였던 골목을 빼앗겼다. 이런 틈을 타 이재에 밝은 사람은 관광 상품을 팔고, 식당을 짓기 위해 몇 채의 허름한 집을 사들이고 있다. 수동은 청주 도심에서 5분 거리에 있다.
 
뒤로는 우암산이 허리처럼 둘러져 있고, 앞으로는 무심천이 길게 흐르고 있다. 도심과 2-3도의 온도차가 나고, 마을 어느 곳에서도 도심의 밤풍경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이런 곳이 개발의 물결에 휩쓸려가고 있다. 지지리도 궁상내 나는 담을 헐고 번듯한 집을 짓고 싶고 답답한 골목에 뻥 뚫린 도로를 내고 싶은 것이다. 자본이 흐르는 곳에 제일 먼저 일어나는 일들이 수동 달동네 골목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골목이 우리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면 욕심일까. 도시 속에서 골목이 사라진 세상풍경은 윤곽이 또렷하지 않은 얼굴처럼 밋밋할 것이다. 늙어 추해도 좋으니 골목이 오래오래 살아 있으면 좋겠다. 마음의 쉼터 한 곳 쯤 건재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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