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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재 권사(수필가, 청주영광교회) 4호 1월 16일자
상생
 
기독타임즈 편집국   기사입력  2012/01/12 [14:03]
▲ 김윤재 권사(청주영광교회)     ©

가지고 올 수 없어 두고 온 것이다.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제일 먼저 챙겼을 것이다. 몇 번이고 생각했지만 데려 올 방법이 없었다. 석류나무가 나의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난 후에 깨달았다. 석류나무는 내게 있어 생명을 가진 나무 이상이었다.
 
무엇이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타인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만 석류나무는 내게 특별했다. 나를 여성으로 만들어 준 나무였다. 33년 전 남편과 약혼을 하고 대천외연도에 들렀다 학교 교정에 있는 석류를 먹었다. 젊었고 사랑했고 뜨거웠고. 세상 두려울 것도 부러운 것도 없었다. 그날을 잊지 못해 정원에 석류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살면서 남편이 좋을 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고집을 부려서, 잠자리를 강요해서 나는 외로웠다. 그럴 때 석류나무에게 남편 험담을 늘어놓았다.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기쁜 일이 있어서, 잠이 오지 않아서, 가족들의 늦은 귀가를 기다릴 때도 나는 석류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잘 익은 석류로, 허허로운 가지로, 푸른 잎으로, 붉은 꽃으로 내 마음의 빛깔에 맞춰 나를 위로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달빛에 보이는 석류는 참으로 황홀하고 유혹적이었다. 제 물에 쩍 벌어진 붉은 속살은 그 어떤 비디오보다 강렬하고 도발적이다. 그 붉은 속살을 들여다보며 나는 남편을 용서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석류나무는 남편과 삼각관계를 맺으며 나와 함께 살았다.

주택을 매매 할 때 새 주인은 우리집 살림들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케텐, 소파, 책장, 장독 모든 것을 두고 가라고 부탁했다. 내가 아끼던 살림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석류나무도 좋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이따금 담장 밖에서 둘러볼 참이었다.
 
여름이면 꽃을 보고 가을이면 열매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지난 24년 어김없이 꽃을 피웠고 열매를 맺었고 단풍이 들었었기 때문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흙이 있고 햇살이 있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석류나무는 무탈하게 살아갈 줄 알았다.

주택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 하던 날 아침. 온가족이 모여 마지막 예배를 드릴 때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던 것은 꼭 집을 떠나는 것이 아쉬워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24년간 정든 집을 떠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파트처럼 집을 옮기는 개념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내가 직접 집을 짓고 가꾸고 손때를 묻히며 살아온 집이었다. 안방, 거실, 이층방, 서재, 어느 한군데 소홀한곳이 없었다.

게다가 정원은 내 놀이터였다. 이른 봄 흙을 만지면 긴 잠에서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고, 잎을 틔우고 싹이 나는 것을 보면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주방 한 켠에 음악실을 만들며 행복했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음악을 들으며 거칠어지지 말자고 뻔뻔한 아줌마가 되지 말자고 다짐했던 기억들도 아직은 유효하다. 집은 숙식을 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생활을 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자는 나의 작은 꿈을 진행하던 곳이었다.

이런 곳을 떠나려니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내가 흘린 눈물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석류나무를 두고 가는 것이었다. 이사를 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주택으로 우편물을 가지러 다녀온 남편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석류나무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달려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주말 집에 들른 아들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그가 내민 카메라 화면에는 공터 흙더미 위에 석류나무가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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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1/12 [14:03]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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