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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준(白樂濬,1895-1985)목사, 사학자, 교육자(연세대학교 총장) (2)
이상규(전 고신대학교 부총장, 현 고신대학교 교수(역사신학))
 
편집부   기사입력  2022/07/11 [16:33]

연세대학교에서의 봉사 

학위를 마친 그는 1929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문과과장을 맡았다. 당시 학교는 규모도 적었고 대학의 면모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백낙준은 문과 과장실을 칸막이로 막아 ‘문과연구실’을 만들었는데, 여기에서 《조선어문연구집》(1930)이라는 최초의 정기학술지를 간행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총장으로 재임하던 1949년 ‘동방학연구소’(현 국학연구소)를 창설하게 된다. 백낙준은 국학 연구의 학풍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했다. 당시 일제는 국어, 국사, 국문학 등을 가르치지 못하게 했는데, 문과 과장인 백낙준은 최현배를 통해 한국어를 과외로 가르치게 하고, 손진태, 정인보 교수로 하여금 한국사는 동양사에, 한국문학은 동양문학에 편입하여 가르치게 했다. 당시로서는 ‘국학’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조선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실제로 교육하였다. 1930년에는 35세의 나이로 제자인 최이권(崔以權, 1905-?)과 결혼하여 슬하에 4남매를 두었다.

 

백낙준은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일하는 한편 조선기독교서회 이사, 조선어학회 회원, 영국 황실아주학회 한국지부 이사, 진단학회와 조선민족학회 발기인, 조선기독교청년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38년에는 영국 왕립역사학회 회원이 되고 그해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이사장에 선출됐다.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일하면서 연희를 민족정신의 요람으로 키워오던 백낙준은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1939년 일제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일제는 연희전문학교를 접수하여 경성공업전문학교로 개명했다. 이때부터 백낙준은 해방을 맞기까지 6년간 마포의 마차조합 서기로 일하면서 일제 말기의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이 시기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그의 이름으로 발표된 친일 논설, 1941년 조직된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한 일, 그리고 ‘조선장로교신도 애국기 헌납 기성회’ 부회장으로 참여한 일 등 친일 행적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간행한 《친일인명사전》(2005)에 수록된 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교부장관, 행정 관료로서의 활동 

해방 후인 1945년 8월 22일 백낙준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장을 맡았고, 그해 미군정의 위촉으로 조선교육심의회 자문위원이 되었다. 당시 교육계와 학계의 권위자 100여 명이 위원으로 위촉되었는데, 이 위원회 중 백낙준을 포함하여 한재홍, 하경덕, 김활란, 홍정식, 키퍼 대위가 제1분과위원회에 속했다. 제1분과위원회는 교육이념을 정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때 백낙준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우리나라 교육이념으로 정할 것을 제안하였다.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안이 채택되었다. 백낙준은 홍익인간을 ‘Maximum Service to Humanity'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지덕체를 겸비한 전인적인 인간, 이웃과 민족과 세계에 봉사하는 이타적인 인간상 구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 민족교육의 목표로 삼은 것이라고 허호익 교수는 해석한다. 1945년 12월 18일에는 다시 연희전문학교로 돌아가 교장을 맡았고, 1946년에 연희전문이 연희대학교로 승격하면서 초대 총장에 부임하여 1960년 7월까지 재임하였다.

 

1950년 5월부터 1952년 10월까지는 이승만 정부하에서 제2대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으로 봉사했다. 1950년 11월 국무총리로 임명된 바 있으나 국회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문교부 장관으로 백낙준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공교육을 중단할 수 없다고 하여 교실이 파괴되더라도 교사와 학생만 있으면 노천에서도 교육받게 해야 한다며 ‘전시 노천교육’을 실시하고, 피난지 부산에서 대학교육공동관리제인 ‘전시종합대학’을 운영하게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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