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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성 칼럼] 우리는 병아리 감별사가 아닙니다
대전주님의교회
 
이승주   기사입력  2021/05/07 [17:53]
▲ 대전주님의교회 박기성 목사    ©이승주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거닐 때면 화분의 나무에 거미줄이 쳐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거미줄을 제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누가 이기는지 한 번 해 보자는 심보인지 거미는 또 다시 같은 곳에 거미줄을 쳐 놓습니다. 

 

탈무드에 다윗과 거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이 적군에게 쫓기다 어느 동굴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뒤이어 적의 병사들도 다윗을 쫓아 동굴에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동굴 입구에 거미줄이 쳐 있었습니다. 다윗이 동굴로 숨어들어간 사이에 거미가 줄을 쳐 놓은 것입니다.

 

적의 병사들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이 쳐 있는 것을 보고 그냥 갑니다. 거미줄을 본 그들은 동굴을 출입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쓸모없고 귀찮은 존재라고만 생각할 수 있는 거미와 거미줄이 다윗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영화 <미나리>를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이민 살이를 하는 한국인 제이콥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의 일을 했습니다. 알을 낳을 수 있는 암컷 병아리와 알을 낳지 못하는 수컷 병아리를 구별해 내는 일입니다. 어느 날 아들 데이빗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굴뚝을 보고서 아빠 제이콥에게 물었습니다. 

 

“저게 뭐예요?”

“저거? 수놈들을 폐기하는 거야. 수놈은 맛이 없어. 알도 못 낳고 아무 쓸모없어. 그러니까 꼭 쓸모가 있어야 되는 거야. 알았지?”

 

우리는 종종 어린 자녀들이나 아랫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쓸모 있는 것’이라는 말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타자’입니다. 다른 이에게 필요한 것은 ‘쓸모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쓸모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필요요구에 충족되는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쓸모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그 쓸모없는 것의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윗의 목숨을 구한 동굴의 거미와 거미줄이 그 예입니다. 평소에는 그저 귀찮고 필요 없는 존재로만 여겨지던 거미와 거미줄이 쫓기던 다윗에게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타난 필요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존재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내 기준, 내 상황에 필요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함부로 자신이든 타인이든 ‘필요 없는 존재’, “쓸모 없는 존재”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도 아닌 우리가 어찌 병아리 감별사마냥 ‘필요 있는 사람’과 ‘필요 없는 사람’을 구분하여 죽이고 살릴 수 있겠습니까? 아무에게도 그럴 권한은 없습니다.

 

‘나’도 ‘너’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그분의 형상을 닮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니 이 땅의 모든 존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으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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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5/07 [17:53]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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