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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尹東柱, 1917-1945) 독립운동가(항일 시인, “서시” “별 헤는 밤에”) ②
임희국(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교회사 및 신학사상사), 장로교(예장통합) 역사학회 회장)
 
편집부   기사입력  2021/04/27 [14:36]

교토제국대학에 다니던 송몽규와 가까운 거리의 하숙집에 살았는데, 송몽규는 낙양군관학교 입학 이래 요시찰 인물이었다. 윤동주는 그때부터 송몽규와 연관된 인물로 일경의 감시망에 포함되었다. 도시샤대학의 야나기 무네요시는 영문학을 가르치며, 조선의 전통공예를 일본에 소개하는 한편 조선 지배를 강화하는 일본을 통렬히 비판하고, 조선인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했던 인물이다. 

 

치안유지법으로 투옥되다 

1943년 3월 1일, 일제가 징병제를 공포하고 학병제를 실시하자 윤동주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다. 전황은 악화일로인 가운데 치안유지법에 의거한 일제의 탄압은 갈수록 심해졌다. 1941년 5월 15일 실시된 개정 치안유지법은 한층 엄격해지면서 ‘준비행위’를 했다고 판단되면 검거가 가능한 악법이었다. 과연 여름방학 중이었던 7월 14일 귀향을 준비하던 윤동주는 하숙집에서 체포되어 시모가모 경찰서로 이송되었다. 이듬해인 1944년 1월 19일 고희욱은 기소유예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지만 2월 22일 윤동주와 송몽규는 정식으로 기소되었다.

 

3월 31일 교토지방재판소 제1형사부 이시이 히라오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개정치안유지법 제5조 위반(독리분동)의 혐의로 윤동주에게 징역 2년을 언도하였다. 죄명은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의 감화 등에 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내선(일본과 조선)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구주(九州, 규슈) 동쪽에 있는 후쿠오카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윤동주 사망 전보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5년 2월, 그의 고향집에 갑자기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 오라’란 전보가 배달되어 가족들을 경악하게 했다. 아버지와 당숙 윤영춘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있는 사이에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 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규슈제국대학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이라는 요지의 우편통지서가 고향에 배달되었다. 그처럼 사망 전보보다 10일이나 늦게 위독하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사실도 모른 채 후쿠오카형무소에 다다른 아버지와 당숙은 우선 살아 있는 송몽규를 면회했는데 초췌한 몰골의 송몽규는 매일 이름 모를 주사를 맞고 있다는 증언과 윤동주가 사망했다는 증언을 했다.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형무소 안에서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윤동주는 운명하였다. 윤동주의 시신은 규슈제국대학 의학부에서 방부제 처리를 해두었다.

 

윤동주의 장례식은 3월 6일 용정중앙감리교회 문재린 목사의 집례로 치러졌고, 〈문우〉에 발표했던 그의 시 “자화상”과 “새로운 길”이 낭송되었다. 그해 단오 무렵 가족들은 묘소에 ‘시인윤동주지묘’(詩人尹東柱之墓)라고 새긴 비석을 세워 그를 기렸다. 

 

사후에 시집이 출간되다 

그가 사망한 지 7개월 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한국은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다. 윤동주 사후 2년이 지난 1947년, 2월 13일자 〈경향신문〉에 정지용의 소개문과 함께 “쉽게 씌어진 시”가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1948년 1월 30일, 유고 31편을 모아 사후에 시집이 출판되면서 계속 증보되고 “서시”, “별 헤는 밤”등의 시들이 교과서에 가장 많이 실리고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시가 되었다.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는 윤동주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공동집필(이선이:아태장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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