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시골길을 운전하다보면 차 안으로 숨 쉬기 곤란한 이상한 냄새가 스며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퇴비 냄새입니다. 몇 년 전 모 국회의원의 주택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 한 농부가 아로니아 농사를 위해 가축 분료로 만든 퇴비를 뿌렸다가 큰 일(?)을 치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국회의원이 “퇴비 냄새가 심하다”며 시청에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힘 있는 분의 민원이었기에 시청의 담당자뿐만 아니라 간부들까지 현장에 가서 점검을 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결국 농부는 이미 밭에 뿌린 15톤의 퇴비를 모두 수거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퇴비, 즉 자연 거름은 농사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특히 요즘같이 화학비료로 황폐화된 땅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고약한 냄새가 많이 난다는 것이 흠입니다. 그럼에도 땅을 살리기 위해서는 거름을 뿌려야 합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흥미 있는 기사를 하나 접했습니다.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의 토양학과장이었던 유진 P. 디트릭 교수라는 분의 주장입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말씀하신 ‘소금 비유’가 사실은 ‘거름 비유’라는 것입니다.
즉 식용 소금이나 부패 방지용 소금이 아니라 거름으로 쓰이는 농업용 소금에 관한 말씀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병해충 방제나 잡초 억제, 그리고 거름용으로 희석된 바닷물이나 천일염을 밭에 뿌리는 농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진 P. 디트릭 교수의 주장이 맞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는 “너희는 세상의 거름이니”가 됩니다. 그런데 거름이 거름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땅에도, 거름에도”(눅 14:34-35) 쓸 데 없어 그저 내버려 질뿐입니다.
필립 얀시는 그의 책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서 복음 전도자 루이스 팔라우(Luis Palau)의 교회에 대한 비유를 소개했습니다. 루이스 팔라우에 따르면, 교회는 거름과 같습니다. 거름은 한 곳에 쌓아두면 이웃에 악취를 풍깁니다.
그러나 땅에 골고루 뿌리면 세상을 비옥하게 합니다. 필립 얀시는 루이스 팔라우의 이 비유를 소개하면서, 교회는 “밖을 바라보고 그쪽으로 손 내미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또한 그는 이 행동이야말로 ‘교회의 성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도 말합니다.
지역 교회이든, 성도로서의 교회이든 어쨌든 우리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거름입니다. 거름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국 성공회 주교였던 윌리엄 템플(Wiliam Temple)의 말처럼 교회는 “자신의 일원이 아닌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존 웨슬리가 염려한 대로 교회가 ‘외톨이 종교’로 전락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이것의 끝은 ‘파멸’인데 말입니다.
교회는 교회 밖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하고, 세상에 흩뿌려져야 합니다. 거름처럼 세상에 흩뿌려지는 것은 죽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거름이니”(마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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