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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尹東柱, 1917-1945) 독립운동가(항일 시인, “서시” “별 헤는 밤에”) ①
임희국(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교회사 및 신학사상사), 장로교(예장통합) 역사학회 회장)
 
편집부   기사입력  2021/04/07 [16:50]

시인의 꿈을 키우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의 3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그는 유아세례를 받았다. 명동은 당시 북간도 전역에서 독립운동의 기지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는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하여, 5학년 때 급우들과 함께 〈새명동〉 등사잡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1931년 명동소학교를 졸업한 그는 인근 중국인 소학교 6학년에 편입하여 1년 동안 공부했다. 이듬해인 1932년 그는 용정(龍井)에 있는 기독교계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다. 은진중학교 재학 시절 윤동주는 1934년 “삶과 죽음”, “초한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작품을 쓰면서 시인의 꿈을 꾸었다. 윤동주는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자마자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에 편입하여 숭실중학교의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면서 문학에 대한 꿈을 이어나갔다. 그해 10월에는 숭실중학교 YMCA 문예부에서 발간하던 〈숭실활천〉 제15호에 시 “공상”을 게재했다. 

 

연희전문 문과에 진학 

숭실중학교에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윤동주는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자퇴하고 용정으로 돌아왔다. 용정으로 돌아온 윤동주는 5년제인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했다. 1936년 윤동주는 연길에서 발행되던 어린이 잡지 〈카톨릭 소년〉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를 발표했고, 1937년 “오줌싸개지도”, “무얼 먹고 사나”, “거짓부리”등을 실었다.

 

광명중학교 5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윤동주는 대학 진학 문제로 아버지와 심한 불화를 겪었다. 아버지는 의대를 강권하였고, 그는 문과대학에 가고 싶어 했다. 다행히 조부 윤하현의 개입으로 1938년 연희전문 문과 입학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연희전문 재학 시절 윤동주는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도서관 촉탁으로 일하고 있던 최현배로부터 한글을 배웠고, 이양하에게 영시를 배웠다. 여름방학 때면 고향 용정에 돌아와 북부감리교회 하계 아동성경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939년 23세에 그는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 “아우의 인상화”등을 기고했고, 〈소년〉지에 동시 “산울림”을 발표했다. 

 

시집 출간 보류와 일본 유학 

윤동주는 1941년 12월 27일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그동안 쓴 19편의 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표제로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다. 그러나 이양하가 “슬픈 족속”, “십자가”, “또 다른 고향”과 같은 작품이 일제의 검열을 통과하기 어려우니 출간을 보류하라고 충고했다. 그래서 그는 출간을 포기하고 3권을 필사하여 이양하와 정병욱에게 각각 1부씩 증정했다.

 

태평양전쟁으로 물자동원령이 내려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장으로 끌려가는 현실에 윤동주는 고뇌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집안 어른들은 그의 일본 유학을 결정하였다. 1942년 그는 동경에 있는 릿교(入敎)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1942년 1월 19일, 윤동주는 유학 소속을 위해 연희전문학교에 창씨계(創氏屆)를 제출했다. 그때의 굴욕감은 그의 마지막 작품인 “참회록”으로 나타난다. 그해 7월 방학을 맞아 용정으로 돌아온 윤동주는 일제의 만행을 감지하며 동생들에게 한글 인쇄물이 앞으로 사라질 것이니 어떤 것이든 사서 모으라고 당부했다.

 

불과 보름 남짓 고향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10월 1일 사립 기독교계 학교인 경도(京都,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학과로 전학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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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4/07 [16:50]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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