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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 병 99호
김진규 장로 ▲공주대 명예교수
 
편집국   기사입력  2015/08/31 [17:05]
▲ 김진규 장로 ▲공주대 명예교수     © 편집국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손녀딸이 내 귓속에다 수수께끼 문제를 냅니다.
 
“전주 비빔밥보다 더 맛있는 비빔밥은 무엇일까요?”
“글쎄---, 피자헛? 아니면 한비가 좋아하는 호식이 치킨일까?”
“아니에요. 이번 주 비빔밥예요.”
 
전주는 지난주이니 옛 음식이라 이미 상했고, 이번 주 것은 싱싱하다는 것이랍니다. 그러면서 ‘옛 것을 그대로 끌어안고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 무슨 메시지와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여름은 참 유난히도 더웠습니다. 입추는 벌써 지나고 오늘이 가을이 되었다는 처서인데도 아직도 3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좀처럼 수그러들 조짐이 없답니다. 더운 여름철이라 게을러서 그런지 내 서재의 책상에도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히 쌓여 있는 모습이 고물상 마당 같은 분위기입니다.
 
수요일 날은 분리수거하는 날이니 깨끗이 정리하자는 아내의 말에 그러자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여름 한 달을 그냥 보낸 것은 게으름이라기보다는 버리지 못하는 나의 오랜 병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기는 모처럼 책상 위에 쌓인 서류며 자료들을 보면 하나 같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랍니다. 이번 여름에는 더위 중에도 계절학기 대학원 강의에다가 몇 차례의 특별 강연을 준비했던 자료들입니다. 자료 한 장을 찾기 위해 노력한 일을 생각하면 아내 말처럼 쉽게 버려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무심히 TV 채널을 넘기다가 개그우먼 김미화 씨가 펑펑 울면서 방송 토크를 하기에 잠시 본 적이 있습니다. 거의 끝날 때쯤이어서 확실한 내용은 모르지만 대체로 이런 내용인 것 같습니다. 그분이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했답니다. 죽음을 코앞에 두신 분들에게 병원 측에서 하는 검사를 김미화 씨도 같이 해보았답니다. 그 내용은 자기가 가장 귀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재산 30가지를 쓰는 것이었답니다. 김미화 씨도 30가지를 다 쓰고 나니 마음이 숙연해지더랍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루에 3가지씩 지워보라는 것이었답니다. 버리는 연습이겠지요. 그분은 며칠을 지나며 평소에 그렇게 소중했던 것들을 지우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답니다. 이제 하루 이틀이 남았을 때는 리스트에서 재산은 물론이고, 친정 부모들까지도 이미 지워졌고, 마지막으로 자식이냐 남편이냐를 펜으로 지우면서 이제는 눈물도 마르고 마음 한 구석에 찬바람이 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TV 채널에서 본 이야기 하나를 더 하겠습니다. 혼자 사시는 어떤 아주머니 이야기인데 적잖은 아파트가 온통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얼굴과 목소리를 알 수 없도록 처리를 해서 인터뷰를 하는데, 그분은 아까워서 버리지를 못하고 무조건 쌓아놓는다는 겁니다. 저장강박증이라는 병이랍니다. 방, 거실, 부엌, 화장실까지 어디 한곳도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음식물 쓰레기까지 버리지 못하고 종류별로 쌓아놓기도 하고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짐 보따리 때문에 침실의 장롱 문은 못 열어도 쓰레기는 쌓아두어야 편안하답니다.
 
가마솥을 연상케 하는 올 여름은 더위만큼이나 참으로 일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안타까움, 서운함, 마음 졸임과 낙망이 우리를 슬프게도 하고, 때로는 작은 결실로 거드름을 피거나 속 보이는 한 순간의 기쁨으로 깔깔거렸던 모든 일들이 모두 쓰레기가 되어 저장강박증 환자의 아파트처럼 우리 주위를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면 9월이 되고 계절은 가을이라는 명찰을 바꿔 달게 될 것입니다. 새 학기 새 얼굴들이 기대에 찬 눈망울들이 기다리겠지요. 이제 여름은 여름으로 장사 지내고 새 계절 가을을 따라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주말이 되면 만나는 손녀딸 한비에게 나도 문제를 내어야 되겠습니다.
 
“장미가 예쁠까, 맨드라미가 예쁠까?”
“정답은 맨드라미! 장미는 이미 시들었고, 맨드라미는 지금 가을에 피는 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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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8/31 [17:05]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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