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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희(1881-1961) 장로, 독립운동가(개성3·1운동), ‘고아의 어머니’ (2)
김호욱(광신대학교 교수(역사신학), 기독교향토역사연구소 소장)
 
편집부   기사입력  2026/01/23 [18:29]

1916년 어윤희는 전도부인이 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전도부인은 신앙적인 뜨거운 믿음과 사명감, 일정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임명되었는데 당시 여성들이 쓰개치마를 입고 다녀서 남성들이 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전도부인들을 통해서 복음이 안방까지 전해지게되는 일이 많았다. 그녀는 개성과 토산 주로 농어촌 산간벽지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전도부인으로 활동하였다.

 

개성 3·1운동의 독립선언서 배포

1919년 3월 1일 경성부 태화관에서 민족대표들이 모여서 독립선언식을 갖고 삼천리 반도 땅에서 일제의 지배에 항의하며 일제히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오화영 목사는 2월 중순부터 독립선언서를 배포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의 아우 오은영과 함께 이 일을 실행하였는데 1919년 2월 28일 개성에 온 오은영은 독립선언서 100매를 개성북부교회 목사 강조원에게 전달했고, 그는 방법을 찾으며 기도하다가 3월 1일 아침에 전도사 신공량에게 전달하였다. 살벌한 시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전달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 소식을 들은 어윤희가 찾아가 80매를 전달받아 개성 읍내 만월정 등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었다. 이때 그녀는 개성 여자성서신학원 사감으로 있던 시절이었다.

 

3·1운동은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송도고보로 확산되어 갔고, 그녀의 독립선언서 배포로 개성 3·1운동은 들불처럼 퍼저나가게 되었다. 그 후 바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잡혀갔다. 투옥 후 조사를 받던 그녀는 배후를 대라고 윽박지르는 일본 경찰을 향하여 “새벽이 되면 시켜서 닭이 우냐? 우리 민족이 독립할 때가 다가와서 일어났다”라며 도리어 일본 경찰을 향하여 큰소리쳤다. 또한 독립선언서의 출처를 대라는 소리에 “한밤중에 쿵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집 마당에 보자기가 떨어져 있었다”고 하니 일본 검사가 소리를 질렀다. “저런 괘씸한 년! 다 알고 있는데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저 년의 옷을 벗겨버려라” 했다. 어윤희는 오히려 “어떤 놈이 내 몸에 손을 대! 벗은 몸을 보는 게 소원이라면 내 손으로 옷을 벗어주마”라며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는 “자! 실컷 보시오! 당신 어머니도 나와 같을 거고 당신 부인도 나와 같을 거요!”하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치니 검사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는 일화는 그녀의 당당한 기개를 보여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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