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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일 목사 (세종소망교회 담임 / 본지 논설위원) 299호
‘혁명 앞에 선 기독교, 개혁의 길을 말하다’(2)
 
편집부   기사입력  2026/01/23 [18:28]

▲ 진수일 목사(세종소망교회)     ©편집부

둘째, ‘교회의 정치화’와 ‘그리스도인의 공적 소명’은 구별되어야 한다. 교회는 정당의 하청조직이 될 수 없지만, 신자는 양심의 자유 속에 법과 정책, 경제와 문화에서 이웃사랑을 제도화하는 책임을 진다. 셋째, 구조적 모순과 죄의 비판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마음의 우상을 방치한 채 제도만 바꾸면 폭력이 순환하고, 제도의 불의를 방치한 채 경건만 외치면 사랑이 제도화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면의 갱신-관행의 개혁-제도의 정화가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예배적 삶과 제자도를 회복하는 것이다. 신자의 사랑 질서를 재정렬하고, 주중에는 가정·일터·도시 속에서 소명의 윤리를 훈련해야 한다. 노동은 거래 이전에 소명이며, 자본은 사유 이전에 청지기적 신탁이다. 공정 임금, 투명 회계, 상생 협약 같은 경제 윤리를 신자 공동체가 먼저 실천하고 사례를 쌓아가야 한다. 교육과 학문, 미디어 영역에서는 교리문답과 세계관 교육을 다시 하고, 진리·선·아름다움에 대한 규범적 언어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는 그람시의 방법론을 권력 장악이 아니라 ‘진리 섬김’으로 전유하는 길이다. 법과 정책에서는 생명과 가정, 약자 보호라는 최소 정의를 분명히 하면서, 표현·양심·결사의 자유를 넓게 보장하는 최대 관용을 지지해야 한다. 환경과 기술 윤리에서도 창조의 선물과 인간의 청지기 직분을 통합해, 과학 혐오와 환경 우상화 사이의 제3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이와 같은 길은 교회가 종종 느려 보인다. 그러나 급진 혁명은 대개 권력의 공백을 더 강한 권력이 메우는 악순환을 낳았다. 반대로 개혁은 규범의 내면화와 제도의 내재적 변화로 지속 가능성을 얻는다. 또한 “종교는 사적”이라는 반론에 대해, 신앙은 단지 사적 감정이 아니라 인간 이해와 공동선의 규범을 제공하는 총체적 실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공적 이성은 언제나 어떤 규범적 비전의 영향을 받으며, 다원 사회의 진짜 과제는 종교를 퇴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비전을 공정한 장에서 검증하고 경쟁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교회의 소명은 체제를 무조건 지키려는 입장도, 거리에 촛불과 혁명의 깃발을 들고 권력을 재배치하는 입장도 모두가 아니다. 하나님 주권 아래 각 영역의 고유 책임을 회복시키고,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의 내면을 새롭게 하며, 말씀의 빛으로 제도를 비판하고 정화하는 것-이것이 복음적 개혁이다. 오늘의 혁명적 열망은 파괴의 에너지로 소진될 것이 아니라, 창조 질서의 회복과 이웃사랑의 제도화로 전환되어야 한다. 혁명 앞에 선 기독교가 오늘 제시해야 할 길은 바로 이 개혁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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