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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3형제가 같은 날 목사로 임직 받는 온양신광교회 이두영 목사
 
한혜림 편집기자   기사입력  2013/03/29 [15:56]
▲ 온양신광교회 이두영 목사.     © 오종영 발행인

 
1. 만나 뵈서 반갑습니다. 처음 방문인데 교회가 참 아름답게 건축되었습니다. 신광교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교회는 건축된 지 이제 만 8년이 되었습니다. 2005년도에 건축하였으니까요. 이 예배당이 건축되기 전에 이미 두 번의 건축과정을 거쳤구요.

저희교회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드리자면 1980년도에 서수웅 목사님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서 목사님은 신광교회설립 초기에 30호 정도 되는 동네에서 개척을 시작하셨고, 이후 1년 만에 대지 30평에 16평의 교회를 직접 건축하였으나 피치 못할 어려움에 처하셔서 떠나시게 됨으로 교회가 문 닫을 위기를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에 이 소식을 듣고 합동측 교단 출신으로 장군으로 전역하였던 장 목사님이란 분이 그 소식을 듣고 뒤 늦게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된 후 이 교회에 오셔서 3년 정도 사역을 하시다가 교회를 떠나시게 되었을 때 우연히 탕정지역의 모 교회가 입당예배에 동시에 참석하였다가 거기서 그 분을 만났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장 목사님의 권유로 신광교회에 와서 설교를 한 이후 제가 개척했던 교회와 합동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니 제가 3대 목회자이고 교회의 역사는 33년이 지났습니다.
 
2. 오늘의 교회를 이루기까지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교회가 합동할 당시 교인들 숫자가 약 20여명 정도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2년 만에 많이 부흥되어 16평 건물로는 좁아서 교회를 확장해야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온양삼일교회(합동교단)원로 장로님이 소유하고 계시던 땅 300평을 매입한 후 추가로 장로님이 많이 양보해 주시고 도와주셔서 100평을 매입하고 새로운 예배당 건축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당시가 IMF때라 교회 재정이 넉넉지 않아 설계와 허가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던 중 서산에서 목회 후 은퇴를 하고 전도자의 삶을 사시던 형님에게 600만원을 가져와서 설계와 허가절차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을 했지만 드디어 180여평의 성전이 건축되었고, 완공시점에는 교회주변의 현대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부흥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더군요. 예배당 준공 후 교회가 부흥함에 따라 예배당이 다시 좁아졌습니다. 성도수가 300명을 넘기면서 그 예배당으로는 도저히 성도들을 수용하기가 한계를 드러냈거든요. 그러나 당시 내가 심장수술을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후라 많은 우려도 있었으나 다시 건축을 위한 기도에 들어갔고 하나님의 은혜로 2,200평의 대지에 연건평 1,300평의 성전을 14개월의 공기를 거쳐 건축하고 입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3. 감사한 일과 힘들었던 일도 있었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고 난 후 외지에서 온 한 집사님이 계셨는데 참 많이도 힘들게 하였고 그 후유증으로 교회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힘든 일도 있지만 감사한 일도 생기더군요. 그 집사님이 떠나간 후 교회가 평안해 지고 일년 만에 이전보다 더 좋게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장로 8명, 은퇴장로 4명, 피택장로 1명, 권사 15명, 안수집사 8명, 여집사 10명을 세웠으며 건축 후 힘들었던 대출금의 상환도 일부 이루어져 부담도 완화되고 교회도 매우 은혜로워졌습니다. 5월 4일에는 일군들을 세우기 위한 임직식도 예정되어 있구요.

이제는 온 성도들이 하나되어 기도하고 전도하면서 아산지역의 대표적인 교회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 과분한 모든 축복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믿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4. 어떻게 목회에 입문하게 되셨는지요?
저는 14살 때 혼자 인천으로 도망하듯 떠나 아는 이도 없는 곳에 살면서 고학을 하였습니다. 혼자서 신문팔이하고 시계 도금하는 곳에서 일하면서 고등공민학교를 다니면서 2학년 때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송도고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경야독의 생활을 이어가다가 질병으로 많은 고난을 당하던 중 교회에 다니던 형, 누나들이 찾아와서 기도해 주고 교회에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곤 주일새벽에 담임목사님의 안수 기도 받고 치유된 후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후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였으며, 고교 졸업 후 69년도에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하였고 군대를 갔다 온 후에 다시 대한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한 후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회사역은 74년에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하였으니, 내년이면 성역 40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5. 온양신광교회의 자랑거리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자랑거리라면 무엇보다도 우리교회 교인들입니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참 순수합니다. 당회의 경우도 특별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수석장로님에게 내 의중을 전하면 잘 알아서 처리하십니다. 너무도 선한 장로님들이시지요. 그분들은 변함이 없습니다. 일례로, 저희 교회 박태권 장로님은 도지사와 국회의원을 지내신 분으로 바쁘신 분이지만 수요일마다 반찬 나눔과 급식봉사에 적극 봉사와 후원하시는 모습을 모면 너무도 감사한 것 밖에 없습니다.
 
6. 4월 15일(월)에 세 명의 아들이 목사안수를 한날 같은 장소에서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감회가 남다르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들이 셋인데 그동안 누구 하나 목사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집사로든, 장로로든 잘 봉사하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아이들 고생 참 많이 시켰습니다. 그런 애들인데 그 세 아들이 곱게 자라서 어느 날 큰 애가 안산에서 정리하고 내려왔고, 다음에 둘째가 일을 정리하더니만, 세 아들이 교회를 건축하고 난 후 3개월 동안 함께 작정기도 한다고 하더니 3개월 되던 때 신학을 해서 사역자의 길을 간다는 이야기를 사모를 통해서 전해왔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그 말을 사무에게 듣고 나서 저는 사모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목회자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길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 후 삼형제가 백석대학에 진학하여 공부하였고 결국 삼 형제가 오는 4월 15일(월) 오후 1시에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함께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은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세 아들이 같은 날 안수 받는 경우가 흔치 않는데 그것도 우상을 섬기던 우리 집안이었는데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할 일 아닌가요?
 
7. 3명의 아들이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목사님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참 엄하게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신앙지도를 하면서 매도 많이 들었구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사모의 기도, 즉 어머니의 기도가 아이들의 방향을 이끌어 준 것 같습니다. 제 집사람은 하루에 5시간씩 교회와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영광이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사모의 기도라고 봅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연탄가스로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심장병 수술로 인해 고비를 넘기기도 했는데, 그래도 아이들이 곱게 자라준 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이제는 세 아들들이 항상 솔선수범하고 모범을 보이며 사역하는 목회자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8. 앞으로 세 아들이 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게 될 터인데 어떤 목회자가 되기를 소망하고 계신지요?
사실 지금 제가 보기에는 물론 욕심일 수도 있지만 요즘 젊은 목회자들이나 제 아들들이나 성에 차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세대는 목회하면서 많이 배고프고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봉사할 자리만 있어도 감사했지요. 그런데 요즘 젊은 목회자들을 보면 너무 유약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아이들이 다 결혼을 하고 분가해 살지만 야단을 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늘 솔선수범하고 겸손하며, 시종일관 초심 잃지 말고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목회자가 될 것을 당부하곤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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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3/29 [15:56]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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