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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할 수 없는 고난과 영광 (로마서 8:17-18) 247호
김종택 목사 / 발안제일교회
 
편집부   기사입력  2022/02/23 [14:38]
▲ 김종택 목사 / 발안제일교회     © 편집부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후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상속자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의 상속, 후사가 단절되어 죽음의 저주, 질병의 저주, 온역, 코로나 19 전염병, 시기와 분쟁, 시기와 악독의 저주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내셔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속시켜 주시려고 또 한 사람 예수님의 피값으로 대속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더니 놀랍게도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 삼아 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상속자,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 그분의 사랑의 속성을 상속받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고 상속자가 누리는 영광을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족으로 전입신고 되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지금 현재도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고 특별히 영원한 천국에 입성하여 하나님의 품에 안기며 모든 눈물 씻어 주시며 모든 질고를 다 없애 주시는 하나님 주시는 안식의 축복을 받을 하나님의 상속자이지만 현세에 받아야 할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함께 받는 하나님의 후사 

하나님의 후사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이 고난은 마음의 법과 육신의 죄의 법이 서로 싸우면서 비롯되는 내적인 고난을 말씀합니다.

 

로마서 7장 23-24절을 보십시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내 마음에 두 가지 법이 있는데 마음으로는 성령의 법을 지켜 거룩한 삶을 살고 싶으나 육신의 소욕으로 육신의 죄의 법을 지키려 하니 나는 곤고한 사람, 괴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성숙한 성도는 죄의 민감성이 높아져 (1)자기혐오(self-disgust) (2)자기 절망(self-despair)의 상태에 이르게 되고, 자기 육신 안에 선한 것이 조금도 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존 스토트는 “이는 거듭나지 못한 자가 죄로 인하여 탄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고 칭의 받는 자, 하나님의 양자, 후사가 된 성숙한 성도들의 탄식”이라고 말합니다. 즉 존 스토트는 이것을 ‘구원을 위한 호소’라고 표현했습니다. 단순히 죄로부터의 구원을 위한 호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간의 갈등을 극복하게 해 달라는 호소인 것이라 했습니다. 

 

두 법의 충돌, 깨닫는 자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 

거듭나지 못한 자는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두 법의 투쟁을 깨닫지 못하며, 따라서 그것으로 인해 탄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곤고한 사람은 이를 깨닫습니다.

 

바울의 탄식이 무엇입니까? 선을 행하려고 노력했지만 전혀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절망감과 비참함에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로마서 8장 18절에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 받는 고난, 현재 받는 곤고함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내적 고난과 외적 고난으로 구분됩니다. 내적 고난은 말씀드린 대로 마음의 법과 육체의 법이 투쟁함으로 비롯되는 고난이며, 예수 믿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마태복음 5장 10절에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했고, 딤후 2장 3절에서는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잠깐, 잠시 받는 고난입니다. 고후 4장 17절을 봅시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는데 현재 받는 고난은 죄로부터 해방된 성도들에게는 현재의 삶 속에서 마음의 법과 육체의 법의 투쟁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외적 고난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이 고난은 잠시 받는 고난이며 장차 받을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의 후사로서 성도가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며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받아 누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594년 초 칼빈의 건강이 심히 나빠졌습니다. 평생 두통, 천식, 소화불량, 열병, 담석증에 시달리는 육신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임무에 충실했다고 합니다. 몸은 더욱더 쇠약해져 신장염이 악화되어 그는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떠날 준비를 합니다. 그해 4월 25일 유언장을 썼는데,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복음을 전하며 살게 하심을 감사하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얼마 안되는 유산을 제네바 대학과 가난한 외국인에게 남겨달라고 부탁하고, 주의 일을 하면서 자신이 분출한 노가 있다면 용서해 달라고 했답니다. 4월 28일부터 몸이 점점 약해졌으나 정신만은 또렷했는데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지만 제자들에게 사역에 충실하고 낙심치 말라고 권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5월 27일 8시 무렵 칼빈은 평화롭게 주님의 품에 안겨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제자의 기록에 따르면 칼빈은 너무나도 평온했고 손발에 아무런 경련도 없었으며 심지어 깊은 숨을 내쉬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칼빈은 오늘 본문 말씀을 15번 암송했다고 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현재 받는 고난! 

장차 받을 영광! 

기독교 역사는 고난의 역사였습니다. 기독교가 가장 꽃을 피웠던 역사는 로마 10대 황제들의 박해시대였습니다. 맹수에게 찢기는 살육의 순교, 십자가에 화형을 당하면서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았던 초대교회 우리 선배님들이 겪었던 고난은 그들이 그 당시 겪었던 고난은 그들이 천국에 입성할 때 지금도 받고 앞으로 영원토록 받을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907년 장대현교회에서부터 일어난 한국교회의 부흥운동, 그리고 그들에게 밀어닥친 일본 침략자들이 자행한 우리 선배님들이 당했던 고난, 6‧25를 겪으며 공산당들의 박해에도 예수 믿는 죄로 죽임을 당하면서도 예수 부인하지 않으면서 받았던 고난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현 듯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께서 부르셨던 ‘영문 밖의 길’찬양이 생각납니다. 

 

♬ 서쪽하늘 붉은 노을 영문밖에 비치누나 

연약하온 두 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는 가시관 몸에는 붉은 옷 

힘없이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 

 

“나 죽거든 진달래 꽃피는 예수님 핏빛으로 물든 돌박산에 묻어주오, 나 죽거든 내 관 위에 따뜻한 숭늉 한 그릇 얹어주오” 하시면서 숨을 거두셨던 우리 주기철 목사님이 겪으셨던 고난과 그분이 받은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제자입니까? 종입니까? 예수 믿기에 고난이 있습니다. 힘드십니까? 권태를 겪는 분이 있습니까? 밋밋합니까? 미지근합니까? 냉랭합니까? 두렵습니까? 받을 복만 계수하고 계십니까? 고난을 받으라 하십니다.

 

오래전 전주 성은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 전주 성결교회 이대증 목사님 간증을 들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하려 했으나 시골에서 돈도 없는 터라 한쪽 눈을 팔려고 예수 병원에 갔을 때 일어났던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사연을 들은 안과 의사가 당시 예수 병원 원장 선교사님께 보고했더니 병원 직원들과 미국 선교본부의 도움으로 성전을 건축했다는 눈물겨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기억하며 남은 생애를 살아갑시다.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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