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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준(朴寬俊, 1875-1945)장로(순교자), 독립운동가(신사참배 거부) (2)
김호욱(광신대학교 교수(역사신학), 기독교향토역사연구소 소장)
 
편집부   기사입력  2021/07/23 [15:52]

신사참배 반대 운동과 투옥 

환상을 본 다음 날 그는 신문을 통해 학생들의 신사참배 문제로 평양의 3숭(숭실전문학교·숭실중학교·숭의고등여학교) 학교가 존폐 위기에 처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담대한 마음으로 평양 도청을 방문하여 일본인 학무국장과 면담하고 신사참배의 부당함을 따졌다. 미 남장로교회 선교부는 끝까지 학교들을 폐교하더라도 신사참배에 불응하기로 결의하였다. 박관준은 조선총복부에도 진정서를 보내 일본의 멸망을 경고하며, 신사참배는 교회가 할 수 없는 우상숭배이니 철회하라고 강하게 말하였다.

 

그 무렵 평북노회가 개최되어 신사참배를 결의했다는 소식이 평양신학교에 전해졌고 신학생들은 격분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총회뿐이었는데 1938년 9월 10일 소집된 총회에 일본경찰은 단도를 찬 수많은 경찰들을 배치, 겁박하여 총회원 목사들과 장로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말았다. 이때 산정현교회의 주기철 목사와 성도들, 이기선 목사 등이 투쟁을 벌이고 있었고, 박관준은 총회 장소에 가서 진리를 사수하고자 했으나 예비검속으로 이미 일제는 이들 반대자들을 감옥에 가둬 놓고 있었다. 총회 전날 감옥에서 기도하다가 비몽사몽 환상을 보았는데, 어떤 성찬을 담은 밥상이 나타나더니 갑자기 뒤엎어지며 흰 밥이 그릇에서 쏟아지고 흙투성이가 되는 광경을 보았다. 그는 총회가 실패할 것을 예감하며 애통해하였다.

 

감옥에서 출옥한 후 박관준은 평양에 와 있는 안이숙을 만났다. 안이숙은 선천 보성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신사참배 거부로 교사를 그만두고 평양에 와 있었다. 그들은 일본으로 함께 가서 일본에서 신사참배의 불합리함을 알려 조선교회를 구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평양에서 일본을 향하여 떠나면서 순교를 각오했다. 최봉석 목사가 안이숙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씀은 무엇이오?” 안이숙은 에스더서 4장 16절을 인용하여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했다. 그들은 일본에 도착하여 박관준의 아들 박영창과 함께 일본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나 신사참배의 부당성과 조선교회의 현실을 알렸다. 그리고 전 조선 총독 우가끼와 문부대신 아라기 등 정치인들을 방문하여 신사참배의 부당함을 알리고, 한 달 후인 1939년 3월 24일 순교를 각오하고 일본 제국의회(충의회)가 열리고 있는 회의장에 종교 법안이 상정되는 날 세 사람이 중의원 방청석에 앉아 있다가 박관준이 번개처럼 뛰어나가 “여호와 하나님의 대사명이다”라고 외치며 일본을 향한 경고가 담긴 진정서가 든 큰 봉투를 아래층 회의장을 향하여 던졌다. 회의장에선 큰 소동이 일어났고, 그들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일본에서 40여 일 정도 갇혀 있다가 감시를 받으며 조선으로 세 사람이 돌아왔다. 

 

출옥운동과 선교 

감옥에 갇힌 이기선 목사와 신앙의 동지들을 풀어달라고 박관준은 신의주 도지사에게 경고하기로 하고 박영창에게는 총독부로 올라가 신사참배 반대로 갇힌 사람들의 부당함을 경고한 뒤 중국으로 피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를 이어야 하니 중국으로 피하라고 했던 것이다. 박관준은 또다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받았다. 그는 1945년 8월은 일본이 망하는 해라고 믿고 너무 기뻐 40일 금식기도를 단행하였다.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져 건강이 쇠약해졌고, 급기야 일제는 가족을 불러 병원에 입원시키게 했다. 그는 3일 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있다가 1945년 3월 13일 “하늘 가는 밝은 길이”찬송을 나지막하게 부르며 향년 70세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장례는 하루 만에 오정모 사모와 몇 사람만 참석하여 간단하게 치러졌다. 한국의 엘리야라 불린 그에게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 마당에 순교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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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7/23 [15:52]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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