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ㅣ칼럼 > 목회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박기성 칼럼] 전갈이 아닌 알을 주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대전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이승주   기사입력  2021/02/04 [15:34]
▲ 대전주님의교회 박기성 목사.

 

우리 집 냉장고에는 다른 것은 몰라도 달걀은 떨어지지 않고 채워져 있습니다. 가족들 중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나는 아침식사를 달걀 프라이 하나와 커피로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서 달걀은 거의 나만을 위한 전용 식재료인 셈입니다. 

 

하지만 요즘 달걀 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겨울마다 발생하는 조류 인플루엔자(AI) 때문입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수많은 닭들이 살처분 되는데, 그 영향으로 달걀 값이 많이 오른 것입니다. 미국에서 달걀을 긴급 수입해 들여오는데도 좀처럼 달걀 값이 안정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성경에는 ‘닭’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없습니다.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에서 닭이 길러진 것은 BC. 12세기부터 인 것 같습니다만, 실제로 일반 대중에게는 보편화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닭 보다는 비둘기를 더 많이 길렀습니다.

 

그러다보니 ‘닭’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달걀’이라는 단어도 따로 없습니다. 단지 ‘알’이라는 뜻의 ‘베차(betsah)’(신 22:6, 욥 39:14 등)라는 단어가 있을 뿐입니다. 즉 ‘베차’는 달걀(egg)이라는 뜻을 포함하여 새의 ‘알’이라는 의미로 포괄적으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베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온(o-on)’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 가르치실 때 하신 말씀 중에 한 번 나옵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o-on)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눅 11:11-12)

 

광야에서 전갈은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전갈 중에는 종종 흰 것도 있었습니다. 전갈이 몸을 공처럼 구부리고 있으면 마치 새의 알이나 달걀처럼 착각하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알/달걀’을 달라는 자식에게 ‘전갈’을 줄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옛날 팔레스타인에서는 그것이 새의 알이었든지 아니면 달걀이었든지 간에 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처럼 달걀을 손쉽게 구해서 매일 아침마다 먹을 수 있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에 목사님이 심방을 오시면 어머니는 집에서 키우던 닭이 낳은 달걀을 서너 개 삶아 대접해 드렸습니다. 센스가 있으셨던 목사님은 그 달걀을 다 드시지 않고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 남은 달걀은 비로소 나와 동생의 차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조류 인플루엔자 영향으로 달걀 값이 많이 비싸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매일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속히 코로나와 더불어 조류 인플루엔자도 진정이 되어 달걀 값도 안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늘 그랬던 것처럼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내 프라이를 하고, 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하루를 시작합니다. 전갈이 아닌 알을 주실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와 더불어 말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1/02/04 [15:34]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