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의 순교위에 세워진 한국교회 ①
1863년 12월 매서훈 혹한이 몰아치는 그 추운 겨울, 런던 대학을 졸업한 한 젊은 선교사가 갓 결혼한 사랑하는 아내 캐롤라인 갓프리(Caroline Godfrey)와 함께 중국 땅에 도착했습니다. 임신 중인 아내가 이국생활에서 오는 충격에다 중국의 기후가 영국과 맞지 않아 심한 고생을 하자 그는 아내를 위해 더 좋은 기후를 찾아 중국의 남부 한구(漢口)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비보를 듣습니다. 아내의 죽음 그 임종의 현장도 지켜보지 못한 채 사랑하는 아내가 그만 하늘나라로 먼저 간 것입니다. 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부부를 파송한 영국 런던 선교회에 1864년 4월 5일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냅니다.
“제가 영국을 떠나 여기서 처음 쓰는 편지가 이런 슬픈 소식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내 사랑하는 아내 캐롤라인이 지난달 3월 24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완전히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평소 친했던 미국 선교사 부인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3월 20일 유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겠습니다. 하나 하나 쓰다 보니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을 길 없습니다. 이전보다 더 귀한 선교사역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만 현재는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깊은 절망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중국에 와서 동양선교를 불태우려고 했던 이 젊은이는 선교도 시작하기 전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충격은 배우자의 죽음이라고 말했던 미국의 어느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국에서 아내를 잃어버린 23세의 젊은이의 충격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젊은이가 1866년 대동강에서 순교한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 로버트 토마스(Rovert J. Thomas, 1839-1866)선교사였습니다.
토마스는 아내를 잃은 충격에다 선임 선교사 무어헤드의 월권적인 행위가 심해 선교사 사표를 내고 사랑하는 아내 캐롤라인의 체취가 가득한 상해를 떠나 즈푸로 가서 잠시 중국 해관의 통역관으로 취직합니다. 이곳에서 8개월을 지내는 동안 중국어, 몽골어,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어학을 습득합니다. 그곳에서 근무 중 중국에서 활동하던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이자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중국 담당자 윌리엄 알렉산더(William Alexander)를 만나 선교에 대한 열정을 재충전합니다. 알렉산더는 선교본부에 편지를 보내 무어헤드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토마스를 선교 사역자로 임명할 것을 강하게 천거합니다.
토마스는 1865년 9월 4일 한편으로 선교를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 조선어 습득을 위해서 여러 권의 중국어 성경을 가지고 황해도 창린도(昌麟島)에 와서 2개월 반을 머물면서 한글을 배우며 선교를 합니다. 해안에 머물면서 한국인 천주교인으로서 복음을 전하기에 충분한 한글을 배운 토마스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잠시 북경대학 학장 서리를 지내며 조선 선교를 물색하고 있던 중에 동지사 일행으로 중국에 온 개화파의 거두 평양감사 박규수(朴珪壽)를 만납니다. 그를 만나 조선 선교사로 가고 싶다는 사실을 알리고, 조선에 가면 “잘 지도하여 주시오”라는 부탁과 함께 그에게 중국어 성경 한권을 선사합니다. 오문환의 증언에 의하면 훗날 이 성경은 개화파 거두 김옥균(金玉均)에게, 다시 김홍집(金弘集)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조선선교를 불태우며 기회를 찾고 있던 토마스는 1866년 8월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에 입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배에 통역관 자격으로 승선합니다. 이 배에는 동양인 19명, 서양인 5명이 승선했고 토마스는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항해 중 만날 수 있는 해적들과 대항하기 위해 대부분의 상선이 중무장을 한 것처럼 이 배 역시 중무장을 했습니다.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박규수는 문정관을 파송하여 입국경위를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토마스는 야소교를 전하러 왔다는 사실, 통상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문정관이 청국(淸國)의 허락 없이는 외국과의 통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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