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ㅣ칼럼 > 금주의말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하나님의 말씀을 왜 지켜야 하는가? (신명기 4:1-14) 197호
류명렬 목사/대전남부교회
 
편집부   기사입력  2019/07/08 [16:29]
▲ 류명렬 목사 / 대전남부교회     ©편집국

“귀에 못이 박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같은 소리를 너무 많이 들을 때에 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못’은 망치로 나무나 벽에 박는 못이 아닙니다. 발꿈치나 손바닥에 생기는 ‘굳은살’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한 가지 일을 계속해서 오래 할 때 생기는 굳은살을 ‘못’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1~3장에서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을 회상합니다. 특별히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광야를 유랑하게 된 이야기(신1장)와 요단 동편의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서 정복한 이야기를 기억합니다(신2-3장). 한 사건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으로 실패한 이야기이며, 다른 사건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승리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삼은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지난 광야생활을 회상하며 실패의 사건과 승리의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고 신뢰한다면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거역한다면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명기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경외하는 삶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는 교훈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으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신4:40, 6:3, 12:28, 26:16, 30:20 등).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신4:1). 여기서 ‘산다’는 말은 생명과 존재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생존의 길입니다. 성경을 보면, ‘살리라’는 말씀이 여기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반복되어 나옵니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레 18:5),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6).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한 율법사에게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율법을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0:28).

 

이처럼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생명과 관계됩니다. 모세는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교훈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바알브올’ 사건입니다. 바알브올의 사건은 어떤 것입니까?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사건으로, 이스라엘이 모압 여자들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모압의 신인 바알브올에게 가담한 일입니다. 이 일로, 이스라엘 사람 24,00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모세는 이 사건을 회상하며 바알을 따른 모든 사람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지만, 오직 하나님께 붙어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자들은 오늘까지 생존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붙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온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생명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도 유효합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맘대로 자기 뜻대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믿은 이후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지키려고, 자신을 드려 살아갑니다. 이 두 사람의 삶은 각각 어떤 모습으로 주어질까요? 한 사람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 될 것이며, 다른 한 사람의 신앙은 살아있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1).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요, 은혜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이 됩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가?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혜와 지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신 4:6). 열국 백성들은 이스라엘을 보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으로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어느 민족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훌륭한 지각을 지니게 합니다(시111:10).

 

지혜와 지식은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인생은 수많은 문제의 도전에 대한 응전, 대응의 과정입니다. 인생을 향하여 도전해 오는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힘이 바로 지혜와 지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전해 오는 문제들에 올바른 대응을 하지 못하여, 영광과 존귀를 잃어버리고, 축복으로 주신 것들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지혜와 지식이 부족하여 해서는 안 될 일, 가서는 안 될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지혜로워서 도전해 오는 어려운 문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도 합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이 지혜와 지식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은 타고 난 것이어서,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지혜와 지식이 높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지혜와 지식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의기소침할 것입니다. 이 지혜와 지식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에, 이 지혜와 지식이 빛을 발하고, 삶을 빛나게 하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지혜와 지식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7-8)라고 노래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지혜와 지식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인생의 눈을 밝히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는 것은 그 말씀을 붙들고 지킬 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의 특권으로 고백합니다. 어떤 민족도 누리지 못하는 놀라운 특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함께 하며 이스라엘을 규례와 법도를 통하여 공의로운 큰 나라로 세워 가십니다. 모세는 이 일에 있어서 2개의 반어적인 질문을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 하심같이 신을 가까이 한 민족이 어디 있느냐?”(신4:7)

 

“하나님의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8)

 

모세는 이러한 물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를 확인합니다. 먼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는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당신의 백성이 부르짖으면 응답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입니다. 보잘 것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은 우리와 가깝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아주 공의로운 존재로 부름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이 그에 합당한 공의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리한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민족인 동시에 공의로운 나라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특별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시 119:2-3)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기억하고, 자신의 삶에서 그 말씀을 지켜 행할 때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백성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세상을 향한 너희의 지혜와 지식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지혜와 지식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4:1)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생존의 길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세의 권면은 4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반복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신 4:40).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의 소망은 약속의 땅을 취하고, 그 땅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 사는 복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자, 즉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의 성취를 보게 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때에 복이 있음을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2, 25).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지킬 때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의 열매와 진보는 말씀을 붙들고 지켜 행하는 모습 가운데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귀에 못이 박이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성경이 끊임없이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이며,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지혜와 지식이기 때문이며,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의 성취를 누리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지킴으로 이 은혜를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저작권자 기독타임즈 ⓒ무단전재 공유언론사, 협력교회 및 기관 외 재배포 금지

대전충청지역 대표 기독교주간신문사 기독타임즈(kdtimes@hanmail.net)

발행인=오종영 목사 ㅣ 사장=장원옥 목사 ㅣ 사업본부장=이승주 기자 ㅣ 충청영업소=임명락 기자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9/07/08 [16:29]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 도배방지 이미지

가장 많이 읽은 기사
봉쇄수도원에 입소하는 갈보리교회 강문호 목사 / 오종영
주님의 지상명령과 약속 (마태복음 28:16-20) 179호 / 오종영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18) 255호 / 편집부
특별기고)영지주의란 무엇인가(3) / 오종영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 그는 누구인가?④ / 편집국
구원파는 왜 이단인가? ⑤ / 편집부
구약의 선지자들 / 편집부
반석 위에 지은 집!(마태복음 7:21-27) 176호 / 오종영
3월 31일(부활주일) 오후3시 둔산제일교회에서 만납시다. / 오종영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정체성 (갈 2:20) 90호 /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