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되려면 두가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지금 자신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하는 설교자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설교를 통하여 오늘도 말씀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신자가 있어야 한다. 교회로서 최악의 상황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설교자, 설교자의 말은 사람의 말로 듣는 청중이 있는 교회이다. 예수님이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9)고 말씀하시고, 이 말씀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각 말미에서 반복하신 것(2-3장)은, 자기 백성들이 그분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을 기대하신다. 말씀을 들으므로 “복있도다"라고 확신시켜 주신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라"(눅10:16).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반대로 그분의 말씀 전하는 설교자를 배척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짓이다. “전파하는 자가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왜 설교를 듣는 일이 왜 그토록 중요한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써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듣지 않는다거나 그 말씀에 주의하지 않는 것은 불경건이다. 인류를 죄와 비참에 떨어지게 한 것도 말씀을 구체적으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 대신 사탄의 말을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아니면 사탄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결과가 결정된다. 회개와 믿음 그리고 순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것을 가볍게 여기면,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신다.
에덴 동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문제가 아니었다. 듣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55:8). 절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 생각을 좇아 자기 길을 걸으므로 그릇된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든지 완악하게 하든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는 모든 사람은 말씀이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해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주목하게 하고자 하실 때 “이스라엘아 들으라"(신5:1; 6:4; 9:1)고 외치셨다. 죄인들은 듣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설교자들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해리 아이언사이드(Harry Ironside)가 자기는 설교하는 은사를 받았지만 회중들은 듣는 은사를 받지 못한 것 같다고 한 말은 사실이다. 설교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만큼 중요하다면, 설교를 가볍게 생각하고 경멸하거나 소홀히 여긴다면 신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기를 배우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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