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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장로 (공주대학교 명예교수)10호
셋째 아이 낳기
 
편집국   기사입력  2012/03/30 [16:08]
▲ 김진규 장로(공주대학교 명예교수)     © 편집국
큰딸 인선이가 셋째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셋째 아이 혜성이가 오늘 처음으로 어린이 집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교사로 복직하는 엄마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기도 했다지만, 어린이 집의 재미있는 분위기에 묻힌 듯합니다.

혜성이는 재롱둥이입니다. 주말에 큰딸 식구들이 교회에 가기 위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우리 집으로 오는 일이 혜성이에게는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아직 소변도 확실히 못 가린다고 혼내는 엄마, 누나들 소꿉놀이를 훼방한다고 야단치는 아빠도, 할아버지 집에 오면 대체로 면죄가 되고, 이곳에 오면 기를 펴고 놀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가끔은 저희 엄마 핸드폰의 메모리 키를 누르는 법을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한답니다.
“할무니, 엄마에게 야단맞았어!”라든지, “누나들이 안 놀아줘!” 라고 울먹이며 일러바치기도 한답니다. 이유야 어떻든지 혜성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봉입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우리 부부는 위로 딸 셋에 막둥이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내가 결혼했던 시기인 1976년 우리나라 통계로 출산율이 3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아이가 셋이면 다(多)둥이라고도 하고, 심지어 원시인이라고 하던 시절에 넷이나 낳았으니 내 주위에는 보기 힘든 일이었었죠.

우리 부부는 아이들 넷을 참으로 기쁘게 길렀다고 생각합니다.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아이 넷이냐고, 그런 주위의 눈총쯤이나, ‘내가 2대 독자이니 그럴 것이다’ 라는 이유만으로는 우리 가정의 화목한 기쁨과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셋째 딸을 낳고 우리 부부는 인천의 어느 산부인과 병원 병실에서 감사기도와 감사 찬양을 함께 부르던 생각이 납니다.

물론 시부모 모시며 - 몇 해 동안은 장인 장모님도 함께 모심 - 아이들 넷을 키운다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겠지요.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는 아홉 식구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때 그 대식구를 섬기며 하루에 도시락을 여덟 개씩 싸던 때를 생각하면 아내가 고마울 뿐입니다.

셋째 딸 지연이는 지금도 “엄마, 아빠, 나 어렸을 적에는요, 내 옷으로 확실한 것은 교복뿐이었어요. 모두 언니들 것을 물려 입었었거든요.”라고 합니다. 정말 앨범을 정리하다 보면, 얘가 둘째인지 셋째인지 분간이 안 될 때도 있답니다. 옷이 대체로 같기 때문이지요.

프랑스 여성지 ‘플뤼리엘’이 셋째를 가져야 할 열 가지 이유를 꼽았다고 합니다. 몇 가지 이유를 소개해 봅니다. ‘아이들끼리 우애가 좋다.’  ‘셋째가 첫째, 둘째를 흉내 내어 무엇이든지 빨리 배운다.’  ‘큰아이가 셋째를 돌본다.’ ‘엄마도 살림을 더 꼼꼼하게 하게 된다.’ ‘더 긴 출산휴가가 있다.’

그 책은 이어서 ‘프랑스에서는 셋째를 가진 가정의 10에 3은 넷째를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부부의 금슬이 그 만큼 더 좋아진 까닭이겠지요. 작년 우리나라 셋째 출산이 5만 6천명을 기록해 10년 만에 다시 5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셋째에게 주는 지원과 혜택이 한몫을 한 덕분이라고도 합니다. 이제 남녀 성비도 떨어져 셋째 출산이 아들 낳기와 거의 상관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자라던 때를 기억해보면, 아이들이 셋을 넘으니 웬만한  문제는 자기들끼리 해결되고 스스로 해결하는 자정(自淨) 능력이 향상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동생들을 서로 보살피고 챙겨주는 마음입니다. 엄마가 자기만을 챙길 수 없다는 자각에서인지 제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과, 때로는 자기 몫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도 있다는 기특하고도 성숙한 포기도 겪으며 인성이 향상되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축구 스타 베컴은 2005년 셋째 아이를 얻고서 ‘내 인생의 헤드트릭’이라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미래 사회는 분명히 사람이 가장 큰 자산일 것입니다. 셋째를 계획하는 엄마 아빠들이 쏟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우리 집 큰딸은 초등학교 교사이고, 둘째는 신경과 의사이고, 셋째는 치과 의사가 되었고, 막내는 지금 호주 국비장학생으로 유학중입니다.
 
글쎄요,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어떻게 모두 키웠느냐고 물으면, 저희들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까지, 아니 그 이상이라도 낳고 키우는 일은 반드시 돈이나 환경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내일 토요일이 되면 혜성이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르며 현관문을 열고 달려올 것입니다. 늦은 밤, 내 찬송가 소리 들으며 손가락 물고 잠들 혜성이를 생각하며 아이들 방의 책꽂이를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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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3/30 [16:08]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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