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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원리와 적용(신명기 14:22-29) 123호
류명렬 목사 / 대전남부교회
 
편집국   기사입력  2016/07/28 [17:46]
▲ 류명렬 목사 / 대전남부교회     ©편집국
십일조에 대한 혼란이 지금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으며,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에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십일조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바로 알면, 그 혼란과 잘못은 바로 고쳐질 것입니다. 
 
1. 먼저 십일조의 첫 번째 원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매 년 토지의 소산의 십일조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또 자녀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물질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물질 만능시대에 십일조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삶에 유일한 소망입니다!”라는 신앙고백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신앙의 “보조바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옆에 보조바퀴를 다는데, 십일조는 우리를 물질과 쾌락이 지배하는 이 세상 가운데서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보조바퀴와 같은 것입니다. 
 
2. 오늘 읽은 말씀을 중심으로 십일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봅시다. 성경은 십일조가 두 가지 있음을 말씀합니다.
1) 첫 번째 십일조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위한 십일조입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른 12지파와 같이 땅을 기업으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기업은 여호와 하나님이었고,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12지파가 드리는 십일조로 살았습니다.(민18:21-24)
 
2) 감사와 구제를 목적으로 드린 둘째 십일조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14장에 보면, 첫 번째 십일조와는 다른 성격의 십일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십일조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교제의 십일조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소득을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 먹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십일조는 안식년을 기준으로 매 삼년, 즉 제 3년째와 6년째는 잔치의 성격으로, 기쁨의 성격으로 사용되지 않고,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제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정리하면, 십일조는 레위인과 성전을 위하여 사용하는 첫 번째 십일조와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서 교제하는 감사 용도와 제 3년과 6년째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저축하는 구제 용도의 두 번째 십일조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행하는 헌금생활과 많은 유사성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교회의 유지를 위한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기쁨으로 감사하는 헌금, 그리고 이웃을 위한 구제 헌금 등을 드리고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림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가 우리 소유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인 것을 고백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도 십일조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물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사용되어져야 하는 것을 십일조를 통해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고전이 된 책인데,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라는 사람이 1970년대에 쓴 책입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저자의 시각에서 보면 [가난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조적으로 최저생계비에 인접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이 시대는 [가난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난한 시대를 [그리스도인은 부유하게] 살아갑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저자인 로날드 사이더는 [누진 십일조]라는 개념을 말했습니다. 자신의 소득이 자신의 삶에서 일정액이 넘으면, 즉 기본적인 의식주의 삶을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넘어서 들어오는 소득에 대해서는 1/10이 아니라, 2/10, 3/10의 십일조를 하자는 개념입니다. 넘치는 물질로 인하여,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또 하나님보다 쌓아놓은 물질을 더 의지하여, 사실상 하나님을 잊고 살고, 배교(背敎)하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림으로, 누진 십일조를 드림으로, 신앙적으로 바로서고, 우리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도 돌보는 일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로날드 사이더는 단지 이론가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작가이기 때문에 돈이 더 들어와도, 그것으로 사치하지 않고, 가구는 남이 버린 가구를 쓰고, 옷도 새 옷을 사지 않고, 우리 바자회를 한 것처럼 헌 옷을 구입해서 입었습니다. 그렇다고, 자린고비로 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아들들이 나이키 운동화를 사달라고 떼를 썼을 때는, 사 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내와 여행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진 십일조의 정신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로날드 사이더와 그의 아내는 모든 사람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강조하고, 가르쳤고, 특별히 많은 소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진 십일조를 하라고 하였지만,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은, 편부 편모의 가정에는 차라리 십일조를 하지 말라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십일조는 형식적인 종교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 그럼 우리는 어떻게 십일조를 해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의 자녀라면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 즉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에게 십일조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셨고, 그들은 애굽에서 건짐을 받고,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즉 오늘날 말로 바꾸어 말하자면, 구원의 은혜를 아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안다면, 그는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일이며, 신앙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소나 양으로 제사 드리고, 가난한 사람은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로 속죄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폐지를 주워 하루에 몇 천원 버는 할머니라도 하나님께 자신의 삶에서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십일조를 나중에 하지 말고, 십일조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우리는 소득에서 맨 먼저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다 제하고 난 이후에, 십일조를 하려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절대 빈곤이라면, 교회가 그 사람을 도와야 할 것이지만, 십일조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탐심이라면, 그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3) 십일조를 하되 바른 십일조를 하여야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외친 것은 “온전한 십일조”였습니다.(말3:10) 그 시대 사람들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습니다. 십일조 가운데 일부는 남을 도와주기고 하고, 일부는 자선단체에 기부도 하고, 일부를 십일조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은 첫 번째 십일조에 대해서 말씀하고 두 번째 십일조를 감사와 구제를 위하여 사용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유한 사람들은, 남들 보기에 자신의 일부의 십일조만 드려도 많아 보이기 때문에, 두 번째 십일조를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첫 번째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구제로, 봉사로, 기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고, 공중의 나는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분입니다. 십일조는 그런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이요, 이 십일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를 배우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삶으로, 우리 삶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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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28 [17:46]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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