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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대도’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 ‘칼 귀츨라프’의 영혼이 살아 쉼 쉬는 섬
칼 귀츨라프학회 ‘칼 귀츨라프 날’ 맞아 고대도에서 두 번째 기념행사 가져
 
보도1국   기사입력  2015/08/03 [12:02]
▲ 제막식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학회장 오현기 목사와 내빈 일동     © 오종영(발행인)

학회 회원 및 독일대사관 관계자, 보령시장, 시의장, 백석대 합창단을 비롯한 전국교회 목회자와 성도 등 200여명 참석한 가운데 고대도 55가구 주민들과 함께 칼 귀츨라프 기념비 제막식과 선교심포지움, 찬양콘서트, 선교세미나, 주기도문 사경회 열고 행사 성료
 

본 기사는 기독타임즈 발행인 오종영 목사가 제2회 칼 귀츨라프의 날을 맞이하여 주최측의 동행취재 요청을 받아 1박 2일 동안 동행하면서 느낀 점과 진행된 행사를 중심으로 취재기를 기록한 것이며 2회에 걸쳐 기사를 게재하면서 이번호에서는 칼 귀츨라프와 고대도와의 관련내용을 중심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향에서 기사를 기록하였으며, 다음호에서는 귀츨라프 학회장 오현기 목사의 인터뷰와 이번 기념의 날 행사에 관한 보다 더 자세한 내용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로 불리는 독일의 칼 귀츨라프의 선교183주년을 맞아 ‘아름다운 섬 고대도’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대구 동일교회 오현기 목사(칼 귀츨라프 학회 대표)를 비롯한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를 대신하여 1등 서기관, 실비아 브레젤 교수(독일 에어푸르트대학), 세바스티안 스톨커 박사(베를린 학술원 상임연구원)과 김동일 보령시장, 유붕석 보령시의회 의장, 고대도 김흥태 이장 , 고신총회장 김철봉 목사, 루터회 총회장 김철환 목사, 합신총회장 우종휴 목사 및 전국교회에서 목회자와 성도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 제막식, 선교심포지움, 고대도 주민들과 함께하는 한 여름밤의 아름다운 콘서트, 선교세미나, 귀츨라프의 최초의 성경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주기도문 번역사역을 기념한 ‘주기도문 사경회’등의 행사를 갖고 1박 2일 여정의 행사를 마무리했다.
 
행사가 열렸던 7월 23일(목)-24일(금)까지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서울과 아산, 대전, 대구, 부산 등 전국에서 행사에 참석하여 칼 귀츨라프의 선교정신과 탐험정신을 느껴보기를 원하는 일행들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이른 새벽부터 전국에서 발걸음을 재촉했던 일행들은 오전 10시 대천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간단한 식사 후에 배에 올라 고대도의 땅을 밟았다.
 
서해안에서도 그리 크지 않은 55가구가 모여 사는 섬 고대도, 서해안 개발붐과 맞물려 대천에서 안면도 영목항으로 이어지는 교각 및 해저터널공사가 한창이지만 고대도는 작은 섬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으나 실제로 구석구석 경험해 본 고대도 섬과 주민들, 깨끗하게 단장된 마을은 정겨운 마을이었다.
 
귀츨라프 선교비 제막식과 심포지움을 위해 방문한 일행들을 마치 고향을 찾은 이웃을 맞이하는 기쁨으로 세심한 마음을 써주었던 주민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열악한 시설이지만 이장님을 비롯한 칼 귀츨라프 기념교회인 고대도교회 목사님, 그리고 주민들은 고대도를 방문한 일행들이 불편 없이 1박 2일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를 하는 마음이 깊이 묻어났다.
 
일명 깡통(?)강당에서 실시한 행사였으나 심포지움과 고대도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비롯해 선교세미나 주기도문 사경회가 차질 없이 진행된 잊지 못할 추억과 행복이 묻어난 기념행사였다.
 
첫날 저녁 식사 후 마을 이곳 저곳을 둘러보면서 느낀 것은 55가구가 독립적인 가구라기보다는 하나의 집으로 느껴졌다. 울타리가 없는 마을, 골목마다 아름다운 꽃과 화분으로 장식되고 집집마다 고즈녁함을 느끼게 하는 정원이 가꾸어져 저절로 힐링이 되는 하룻밤이었다.
 
기자가 머문 집 주인에 의하면 섬마을 최초로 새마을운동 시범지역으로 선정되었던 고대도는 각 집집마다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정원은 일반 육지에서 볼 수 있는 정원이 아니라 화분에 조성된 각 각의 꽃들을 조약돌과 큰 돌을 적절하게 섞어 정원의 돌담을 두르고 조화롭게 조성된 정원으로 새마을운동 당시 박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조성되기 시작했다고 하니 어림잡아 50년 가까이 된 셈이다.
 
12시에 대천여객터미널을 출발한 선박은 1시간 여 만에 고대도항에 도착하였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고대도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내렸고, 기본적인 여장을 풀고 일행은 바로 주 행사장에서 약 2km정도 떨어진 칼 귀츨라프선교기념비 제막식을 위해 이동하였다. 선교비가 세워진 안항은 학회의 고증을 거쳐 1832년 칼 귀츨라프가 처음 발을 디뎠던 곳에 세워졌고, 일행은 고대도교회 1호차인 현대 포터 더블캡에 약 20여명이 올라탄 후 제막식 현장으로 이동하였으며 김동일 보령시장과 일부 행사 참가자들은 대구동일교회(담임 오현기 목사)에서 고대도에 기증한 자건거를 타고 현장에 당도하였다.
 
제막식이 거행된 안항은 칼 귀츨라프가 머물면서 한글최초의 성경번역인 주기도문을 번역하면서 서양감자를 소개했던 곳으로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의 숨결이 머물던 곳이라는 생각에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 고대도 마을에 그려진 칼 귀츨라프 관련 벽화     © 오종영(발행인)


독일인 선교사 귀츨라프(1803-1851년)
독일에서 출생한 목사이자 의사인 카를 귀츨라프는 1832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무장 상선 로드 앰허스트호의 통역관으로 충남 고대도에 25일 정도 정박해 있으면서 선교활동과 동시에 감자 재배법, 포도 제조법까지 알려준 것으로 기록되며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로 기록되고 있다
 
고대도가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기까지는 보령시와 백석대학교이 노력이 숨어 있었다. 특히 독일에서 공부했던 오현기 교수는 백석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칼 귀츨라프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 온 칼 귀츨라프 학회장이기도 하며 그와 그가 시무하는 대구 동일교회의 지원은 커다란 힘이 되고 있으며 향후 고대도에 세워질 칼 귀츨라프와 관련된 다양한 기념관과 영성훈련센터를 비롯한 사역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느껴진다.
특히 백석대와 보령시의 최초의 개신교 순례지 고대도 관광 활성화를 위하여 서로 상호 협력 체결은 향후 펼쳐질 귀츨라프 사역에 큰 동력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고대도에는 귀츨라프기념교회가 있다. 바로 ‘고대도교회’이다. 2004년 9월 16일 새로 신축한 칼 귀츨라프를 기념하여 지은 교회에는 기념동판을 새겨 놓았다. “칼 귀츨라프는 한반도에 선교를 시도한 첫 개신교 선교사이다. 그는 독일 경건주의 가정 출신으로 네덜란드 선교회를 통하여 중국에서 선교한 루터교 목사로서 중국 주변의 나라들을 탐사하는 길에 1832년 순조 32년 7월 17일에 이 고장에 도착하여 배를 정박해 두고 약 할달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귀츨라프는 관리를 통하여 국왕에게 성경 한자로 된 전도문서 및 우리그릇 옥양목, 모직물, 담요 등을 헌상하고 한문으로 쓴 통상청원서를 올렸다.
 
그러나 조선정부는 통상 청원을 거부하고 성경은 되돌려 주었다. 복음과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앞당길 수 있엇떤 모처럼의 기회를 놓친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귀츨라프는 고대도 주민들을 위하여 해변에 감자를 심고 재배법을 글로 써서 가르쳐 주었다. 그는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게 했을 뿐 아니라 한글을 배워 그 이듬해 중국 선교잡지를 통하여 세계에 소개한 것은 놀랍고 가히 칭송할 일이다. 우리 한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려던 그의 소원과 열정이 감명깊다. 또한 그는 선교지에서 복음은 본토인 전도자를 통하여 전파하도록 해야 한다는 자립전도를 일찍이 주창하고 실천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의 방문을 기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징표로 그대도와 전국에 있는 성도들이 성성을 모아 이 기념교회와 전시관을 건립하였다.”
 

귀츨라프가 고대도에 오기까지
독일 교회를 대표하는 선교의 사자로 불리우는 귀츨라프는 독일 북부지방인 폼머의 평범한 경건주의 가정 태생으로 어학에 재질을 가진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의 국적인 독일이지만 폴란드계 유대인 혼혈아였다. 1826년 귀츨라프는 루터교 목사를 안수를 받은 후 정식 선교사로 말래카를 거쳐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로 파송을 받았다. 이곳에서 중국 주민과 함께 철저한 학습과 교제를 통해서 중국어 능력을 키웠다. 1832년 귀츨라프 선교사는 런던 선교회의 톰린 목사와 함께 사이암(지금의 태국)에 최초의 선교사로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복음서와 로마서를 사이암어로 번역하였다.
 
1832년 동인도회사는 극동의 새로운 통상지를 개척탐사하려는 목적으로 타이완을 거쳐 조선 서해안과 제주도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에 이르는 항해를 계획하고 그 책임자로 린제이를 임명하였다. 린제이(Hugh Hamilton Lindsay)는 중국선교사 모리슨(R.Morrison)의 추천으로 중국어에 능통한 의사요 선교사인 귀츨라프 목사를 선의(船醫)겸 통역관(通譯官)으로 동승시켰다. 동인도 회사가 준비한 ‘암허스토경호’(Sir. S. Lord Amherst)는 1천톤급의 군함으로 이 항해의 목적은 통상 개시에 관한 관심을 살피는 일이었다. 그러나 귀츨라프는 이를 조선에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절호의 선교기회로 여겼다. 그들은 1832년 7월 17일 조선에 도착하여 배질만 북쪽에 있는 장산곶(長山串)에 닻을 내렸다. 귀츨라파는 전도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이틀 후에 그 곳을 떠나 1832년 7월 23일경 고대도에 도착하였다.
 

귀츨라프의 선교사역의 의미
귀츨라프는 1832년 7월 17일부터 한 달간 조선(朝鮮) 서해안을 방문하였고 특히 고대도에 머무르며 기독교를 전파하고 서양문화를 전달했다. 귀츨라프 선교사는 고대도에 와서 조선 순조 왕에게 근대 문명과 기독교를 전하였다.
 
▲ ①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로 고대도에 입향했던 칼 귀츨라프 ②칼 귀츨라프 기념학회장 오현기 목사(전 백석대 교수)     © 오종영(발행인)

그리고 당시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벗어나 세계 각 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교역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런 점에서 고대도는 한국의 근대화를 촉구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며 한국 최초로 개신교 선교사에 의해서 복음이 전해졌던 기독교 순례지이다. 이는 시기적으로 보아 토마스 목사가 평양을 방문하여 대동강변에서 주민들에게 성경을 나눠주다 순교한 1866년보다 34년 앞선 일이며ㅏ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인천에 상륙한 1885년보다 53년 앞선 일이었다. 그리고 최초의 가톨릭 선교사인 불란서 신부 모방이 내한한 1836년보다 4년이나 앞선다.
 
귀츨라프가 성경과 기독교문서를 서해안에 반포한 이 사건은 굳게 닫힌 조선의 문을 두드려 조야(朝野)에 외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서해안 방문은 토마스의 대동강 순교(1866년), 로스의 성경번역(1882년)으로 맥이 이어져 나갔다. 그 성경을 읽은 사람이 개종하여 선교사 없는 신자가 자생되었으며 은둔의 나라를 깨고 최초의 소래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비록 귀츨라프가 한국에 짧은 기간 밖에 머무르지 못했고 또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돌아갔으나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로서 한국 선교의 길을 닦아 놓은 것이다. 성과의 유무를 떠나서 귀츨라프는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서 한국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고대도 역시 한국 최초의 선교자로 큰 의미가 있다.
 

귀츨라파의 고대도 선교사역
1832년 7월 26일 귀츨라프 일행은 나이가 지극하고 위엄이 있는 김씨 성의 군관과 이씨 성의 문관의 방문을 받는다. 귀츨라프가 만난 문간과 무관은 순소실록에 의해 홍주목사 이민회와 수군우후 김형수로 확인되었다. 귀츨라프 일행은 그들이 조선을 방문한 목적이 국왕에게 통상을 정식으로 청원하는 서한과 함께 선물을 전하려는 것임을 밝혔다.
 
또한 귀츨라프는 갑판 위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성경을 나눠 주었고, 그들이 기쁘게 받는 것을 보고 아주 만족해하며, 조선 국왕도 성경을 받아 읽고 유익을 얻을 수 있기를 갈망하였다. 그들은 양이(Yang-yih)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고 번역하도록 하였으며 감자를 성공적으로 재배하는 법을 전했다. 그리고 야생 포도를 가지고 포도주 만드는 법과 포도 재배법도 가르쳐 주었다.
 
귀츨라프는 감기 환자를 비롯해 노인 60여명을 치료하였다. 8월 11일 귀츨라프는 25일 동안 체류했던 조선을 떠나면서 조선의 복음화를 이렇게 기원하였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큰 섭리로 자비로운 방문의 날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영광스러운 진리를 전파하도록 서둘러야겠다. 조선국왕이 처음에는 거절하였던 성서를 지금 갖고 있는지 또한 읽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강경의 관리와 주민들은 성서를 받았다. 이 첫 전도는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확신한다. 조서에 어둠이 가고 속히 새벽이 와서 밝은 날이 오기를 다같이 바랄 뿐이다.”
 

제2회 귀츨라프의 날 행사 소개
이번 제2회 귀츨라프의 날 행사에서는 ‘칼 귀츨라프 선교기념비 제막식’과 ‘학술 심포지움’ 그리고 ‘세계적 음악가들과 함께하는 한 여름 밤의 콘서트’와 ‘고대도 일주 도로 및 안항까지의 도보 산책’ 및 ‘선교세미나’, ‘귀츨라프 주기도문 번역 기념 사경회’등이 진행되었다. 짧은 1박 2일간의 여정이었지만 기념행사는 매우 알차게 진행되었다.
 
특히 선교기념비는 전액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기부를 통해 제작되었으며 칼 귀츨라프학회는 향후 고대도를 보령시와의 긴밀한 협력 속에서 영성훈련센터와 기념관 건립 등 다양한 사업계획을 놓고 준비 중에 있다. (다음호에서는 제2회 귀츨라프의 날 심포지움과 선교세미나, 그리고 주기도문 사경회 내용을 포함해 학회장 오현기 목사의 인터뷰 내용을 포함한 내용을 게재할 예정이다.)
/발행인 오종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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