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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지역 203개 교회와 성도를 위한 기독교역사교육의 현장 ‘공주기독교역사박물관’
 
보도1국   기사입력  2014/07/18 [12:49]
▲ 공주시기독교연합회 양희옥 목사와 내방객들에게 공주시기독교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기독교역사위원 최범수 장로     © 오종영 발행인

공주지역 초기선교사들의 활약상과 ‘신학월보’에 개제된 1907년
대부흥운동의 종착지로서의 공주부흥운동 사료 발굴 전시
8월 말 공주중앙장로교회로 역사자료실 이관 전시할 예정


공주기독교역사박물관에 가면 공주지역 최초의 교회인 공주침례교회(현, 꿈의교회)와 공주제일감리교회 등 공주지역 초기교회의 시작과 선교사들의 활동상 및 샤프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영명여학교, 영명남학교를 비롯한 교육선교활동을 통한 신앙과 민족정신 함양에 앞장서 민족의 개화와 의료선교를 통한 어린이 사망률 감소에 앞장섰던 활동상들을 비롯하여 사애리사선교사에 의해 영명학교에 입학했던 유관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종착점이랄 수 있는 공주지역 부흥운동사에 관한 다양한 사료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공주지역 최초의 교회는 어디일까?
공주지역 감리교의 초기선교사는 누구일까?
공주지역 최초의 장로교회와 교회 수는 몇 개나 될까?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공주시 금강공원로에 위치한 리버스컨벤션센터 내에 있는 주은선교센터 기독교역사사료전시실에 가면 된다.
이곳에는 공주의 개신교 선교사 선착 역사와 활동을 비롯하여 감리교선교사를 비롯한 영명학교와 공주부흥운동의 역사 등 새롭게 발굴한 사료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기록물들을 전시함으로서 지역교회 성도들의 공주지역 기독교 역사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공주기독교역사 박물관을 방문하여 공주지역 최초의 교회인 공주침례교회(현 꿈의교회)와 감리교초기 선교사들의 교육선교활동을 중심으로 한 선교사역 및 공주지역 기독교의 초기 역사와 주요 전시내용을 사진으로 엮어 소개하고자 한다.
 
▣ 공주의 개신교 선교사 선착 역사와 그 활동
『우리나라 개신교의 전래는 1884년 미국 북장로교 소속 알렌선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1885년 미국 감리회 소속 아펜젤러 선교사와 미국 북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의 활동이 본격화 되었다. 그렇다면 공주지역 기독교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 침례교회의 초기 선교사
1896년 침례교의 엘라딩 선교회에서 폴링 선교사부부와 가데린 선교사가 충남 강경과 공주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이후로 독립선교사로 활동 중이던 펜윅이 1901년 이어받았다.
펜윅은 평남 원산과 충남 공주를 오가며 활동하였고 그는 충청도 지방의 한국인 사역자로 신명균과 황상필을 세웠다. 1903년 반죽동에 성경학원을 개설해 침례회 지도자를 양성, 배출하다가 침례신학교로 발전하게 된다. 공주의 최초 침례교회는 1896년 공주 침례교회(현 꿈의교회)이며, 현재 공주지역 침례교회는 46개가 있다.
 
2 감리교회 초기 선교사
공주지역의 경우 1892년 미국 감리회에서 경기도 수원과 충남 공주를 선교지로 삼아 1896년 슬크렌턴 스웨러 선교사를 공주 책임자로 활동하게 하였고 이렇게 해서 1902년 공주 제일감리교회가 세워졌다. 현재 공주지역에는 58개의 감리교회가 있다.

이 때 감리교 선교사의 선교활동은 주로 의료와 교육에 중점이 두어졌고 당시의 국내 의료환경은 취약하기가 이룰 말할 수 없었던 때라 영아 사망률이 출생률 대비 35%에 달했고(어떤 문헌에는 40-65%라는 기록도 있다)전염병이라도 창궐하면 별다른 대책이 없었던 시절로 1903년 맥길 선교샤를 시작으로 반버스거스, 파운드 등 주로 의료선교사가 파송되었다. 특히 1924년 마렌보딩 간호 선교사는 한국 최초 우유보급소를 공주에서 시작했고, 또 영아원을 설립하고 유아진료를 실시함으로써 공주에서의 영아 사망률이 5%대로 낮아지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1886년을 기점으로 학교를 세웠는데 공주지역의 경우 1904년 배제학당에서 활동하던 샤프선교사의 공주 부임에 따라 공주에서의 근대교육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미국 감리회 선교보고서에도 나타나고 있는 내용으로 샤프 선교사는 조그만 학교를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06년 샤프선교사가 영명동산에 묻힘으로 학교도 문을 닫게 되었으나 그 후 1905년에 영명여학교가 설립되고 이듬해인 1906년 영명 남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영명학교의 4대목표는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기른다. 둘째,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몸 바치는 애국자를 기른다. 셋째, 풍부한당시 샤프선교사와 1904년 결혼했던 사애리시 선교사는 1905년 명선여학당을 설립하고 충남지역을 순회하며 교육사업에 열중하다가 샤프선교사의 질병 순교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08년 다시 내한해 명선여학당을 운영하면서 만동여학교(충남 강경)와 영화여학교(충남 논산)을 설립 활발한 교육선교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1914년에는 유관순을 양녀로 삼아 영명여학교에서 공부하도록 주선하였고, 1916년에는 이화학당에 3학년 편입을 주선하는 등 유관순의 신앙, 애국심, 교육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로 사애리시 선교사는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추방(귀국)을 당했으며 1972년 별세했다.

당시 명선여학당(영명여학교)의 교육목표는 첫째, 신앙에 터를 두고 자아를 발견 정화하자 둘째, 생명을 존중하고 개화에 힘쓰자 셋째,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는 사상을 갖자 넷째, 인류공존의 의의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자 다섯째, 국가와 민족의식을 굳게 하자로 이 교육목표에서 볼 수 있듯이 사애리시 선교사의 신앙과 애국 교육을 일제 강압 하에서도 영명학교 학생들, 특히 유관순의 독립정신 함양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류관순이 1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의 주역이 된 것은 이러한 신앙 교육과 사애리시 선교사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광복을 오게 하였고 광복 후부터 교회는 외형적으로나마 일제 압제 이전으로 복원되고 신학교가 세워지는 등 변모의 길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1950년 발발한 6.25전쟁으로 인해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자 교단은 이합집산의 큰 변란을 겪는다.
 
그럼에도 개신교는 196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면서 유래없는 부흥성장을 했고 이를 기반으로 6만여교회와 1천만 성도, 2만여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이상은 공주지역 기독교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한 글로서 기자가 공주기독교박물관에 전시된 글을 인용 정리한 것이다.

사료에 의하면 공주지역 최초의 교회는 공주침례교회로 1896년 세워졌으며, 최초의 감리교회는 공주제일교회로 공주제일감리교회는 2011년 근대문화유산 건축물로(등록문화제 제472호)선정되었다. 그 외 공주성결교회가 1940년에 세워졌고, 공주중앙장로교회가 1947년 세워짐으로서 공주지역 최초의 장로교회가 되었다. 공주시기독교연합회(회장 양희옥 목사, 신관중앙교회)에 의하면 공주지역에는 침례교 40개, 성결교 33개, 감리교 58개, 장로교 57개, 기하성 15개등 203개로 통계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면 공주지역의 유서 깊은 교회들의 태동과 시련기, 성장기, 부흥기에 관한 객관적인 이해를 도모할 수 있으며 전시관의 한쪽에는 공주부흥운동을 말하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종착지 공주부흥운동의 기록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개신교)부흥운동사를 말한다면 원산부흥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원산지역 주재 선교사들이 모여 가진 기도회 동안에 방흥한 원산부흥운동은 두 명의 여성 선교사 즉 중국의화단 사건으로 원산으로 피신해온 화이트 선교사와 캐나다 장로교 출신 맥컬리 선교사가 한국인들 가운데 부흥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기도회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다른 선교사들도 하나 둘씩 기도회에 합류하였고 이들은 차제에 공개적으로 기도회를 갖기로 하고 의료선교사 하디(Robert A. Hardie)에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강의를 부탁하였고 강의 요청을 받은 하디는 말씀을 준비하다가 자신이 저지른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에 대해 회개하게 되고 기도회 시작 전부터 은혜를 경험한 하디는 기도회를 인도하는 동안 동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허물을 통회했고 이같은 하디의 고백은 동료선교사들의 회개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장로교화 감리교가 연합해 금식, 통회하면서 부흥이 확산되었다.

『신학월보』의 사설에 의하면 1903년 원산부흥운동(강사 하디 선교사)을 시발로 해서 1904년 ‘하디’선교사의 선교 지역인 강원도로, 서울로, 인천으로 번져갔고, 1905년 9월에는 장로교 4개선교회와 감리교 2개 선교회소속 선교사150명은 장?감(長?監) 연합공회를 결성하고 연합부흥회를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를 비롯한 전국의 크고 작은 교회에서 구정부흥회가 시작되었고 평양에서 시작된 성령의 역사는 2월에는 길선주를 통해 서울에서 그대로 재현되었으며 4월 8일 삼일기도회를 시작으로 공주에서도 일주일간 부흥회가 시작되었고 집회 3일째부터 은혜받기 시작하여 공주 부흥역사는 약 20일간(3주간) 이루어 진 것으로 1907년 신학월보에 소개된 사료집을 발굴되었다.

이에 공주시기독교연합회는 1907년 평양 부흥운동의 연장선상에서 공주지역에도 부흥이 일어났으며 이 시점에서 공부 부흥운동을 재조명함으로 공주부흥을 점화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올 가을 평양대부흥운동과 그 연장선상에서의 공주부흥운동을 내용으로 하는 포럼을 주은선교센터와 공동으로 준비하고 있다.

한편 공주시기독교연합회는 오는 8월 24일부터 공주시기독교연합회가 주최하는 연합대성회 기간에 맞춰 공주기독교역사박물관을 공주중앙교회(전갑재 목사)로 사료들을 이전하여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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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7/18 [12:49]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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